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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영화 ‘인터뷰’ 논란, 할리우드 ‘안보상업주의’ 도운 과잉대응

등록 2014-12-25 19:54수정 2014-12-25 20:48

현장에서
김정은 암살을 다룬 영화 ‘더 인터뷰’. 예고편 화면 캡처
김정은 암살을 다룬 영화 ‘더 인터뷰’. 예고편 화면 캡처
워싱턴 시내에 있는 ‘웨스트 엔드 시네마’ 극장이 <인터뷰>를 상영한다길래 24일 낮에 가봤다. 이날 아침에야 상영 결정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이미 25일치 1~2회분이 매진이었다.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는지 매표소는 한산했지만 티브이 카메라 두 대가 표를 사는 사람들을 취재했다. 어떤 이는 뉴스에서 떠들길래 궁금해서, 어떤 이는 누군가 미국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면서 왔다고 했다. ‘대박’이 될 만한 조짐이다.

24일 낮 온라인에 공개된 이 영화를 보니, 할리우드가 오랫동안 써먹은 ‘안보 상업주의’의 전형이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핵무기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실어 미국인 수백만명을 죽이려는 악당으로 묘사됐고, 그를 한껏 희화화하고 마침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령을 받아 암살까지 하는 미국인 토크쇼 제작진은 자유의 투사였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가 현직 지도자의 암살 장면까지 삽입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 <뉴욕 타임스>는 영화업계의 말을 빌어 “소니 픽처스는 이 영화를 만들 때부터 민감한 새로운 영역을 걷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두 감독은 경계선을 밀어부치려 했고, 영화사는 부분적으로는 이들이 라이벌 영화사로 가는 걸 막고자하는 이유에서 이를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영화는 김 제1비서를 현대판 히틀러로 비유하는가 하면, 그가 속옷 차림의 여성들과 술 파티를 벌이고, 부하가 죽자 그를 돌려달라며 신에게 호소하는 장면을 넣었다. 또 북한은 물론 전세계에 생방송되는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들먹여 김 제1비서가 어린아이처럼 울게 만들고, 결국에는 화를 참지 못해 기자를 현장에서 총살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인터뷰를 보는 북한 인민들은 “그는 신이 아니었다”며 동요한다. 마지막에는 김 제1비서가 탄 헬리콥터가 탱크 포탄에 맞은 뒤 화염 속에 휩싸여 사라진다.

북한 쪽이 반발하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장대로 북한이 해킹을 한 게 맞다면, 이 또한 지나친 것이었다. 이 영화는 시사회를 본 비평가들로부터 평균 이하 평점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 영화담당 기자는 해킹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는 비평을 쓸 생각조차 없었다고 했다. 이 정도면 개봉 뒤 2~3주가 지나면 대중들한테서 잊혀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결과적으로 해킹은 영화사를 도와준 꼴이 됐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박현 워싱턴 특파원
소니 픽처스는 애초 해킹에 굴복해 상영을 취소했다가 미국 내 사업 기반마저 흔들릴 정도로 비판에 휩싸이자 재상영으로 선회했다. 그런데 이제는 표현의 자유 수호자처럼 행세를 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북한을 해킹 책임자로 지목했으나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증거가 ‘민감한 소스(정보원)와 방법’이라는 이유에서다. 국가안보국(NSA)이 심어놓은 도청장치일 거라고만 모두들 추측한다. 그러나 미국이 ‘비례적 대응’을 하려면 구체적 증거를 공개해야 그나마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제작부터 해킹, 상영 취소와 미국 대통령의 등장 이후 재상영 결정까지 한편의 희극을 보는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북-미 관계 개선의 길은 더 멀어졌다.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사람들에겐 ‘크리스마스 선물’일지 모르겠으나, 한반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사람들에겐 슬프고 분노가 치미는 일이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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