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개혁·개방 현장을 가다] (2) 점진적 정치개혁
정치·경제·사회 변화 토론촉구
사회주의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
정치·경제·사회 변화 토론촉구
사회주의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959년 쿠바혁명 직후엔 나라 안팎에서 상당히 잔인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당시 국방과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 설립을 주도하면서 반혁명 세력 척결에 나섰으며, 그때부터 40여년 간 국방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2006년 형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임시로 권력을 이양받은 이후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는 쿠바의 물자 부족과 개인 자유의 부족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또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문제는 상당부분 자생적인 것으로 쿠바인들만이 고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변화의 방향과 관련한 공개적 토론을 촉구했다. 이른바 ‘라울식 백화제방’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쿠바에선 전사회적으로 활발한 공개 토론이 진행됐다고 한다. 학생들은 이중통화 제도와 국외여행 제한 등의 문제를 도전적으로 제기했고, 국영신문에서는 경제 실상과 부패, 비효율성 등에 대한 탐사보도도 등장했다. 또 작가·예술가연맹의 회의에서는 더 많은 개방과 표현의 자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이 회의는 텔레비전으로 방영됐다. 이는 피델 카스트로 집권기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특히 라울은 스스로 시장과 사적 소유권, 생산성 등을 강조하면서 쿠바의 변화를 촉구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라울은 군대식 사고방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군대 조직의 효율성을 민간에 접목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울은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맡은 직후인 2008년 8월 인민의회 연설에서는 “사회주의는 사회정의와 평등을 의미하지만 소득의 평등이 아닌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뜻한다”며 “평등주의는 게으르고 덜 생산적인 사람들이 부지런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로 공무원 100만명 해고 계획을 밝힌 뒤 지금까지 50만명 가량을 해고하고 시장을 확대하면서 쿠바인들 사이에 변화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라울의 백화제방은 어디까지나 사회주의 체제 유지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정책을 ‘개혁’(reform)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혁명의 ‘갱신’(updating)이라고 말한다. 이 테두리를 벗어난 행동을 할 경우엔 탄압이 진행된다.
아바나/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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