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예산위원회의 한 직원이 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승인을 요청한 4조달러 규모의 2016회계연도 예산안을 의원들한테 배포하기 위해 상자에서 꺼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임기 2년을 남겨놓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 부유층과 대기업·은행들한테서 10년간 1조달러 규모의 세금을 더 걷어 중산·서민층을 지원하고 사회기반시설을 확대한다는 매우 공세적인 제안을 내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2016회계연도(2015. 10.1~2016.9.30) 예산안 규모를 직전 회계연도보다 6.4%나 급증한 4조달러로 책정해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이는 최근 완연한 경제회복 기운에 힘입어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정책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된 긴축 기조에서 확장 기조로 전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나는 어리석은 긴축을, 미국을 강하게 만들 명석한 투자로 대체하기 위해 의회와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2011년 재정위기에 직면해 양당이 합의한 이른바 ‘시퀘스터’(정부지출 자동 삭감)를 종료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내년 예산안에서 국방비와 비국방비를 각각 올해보다 380억달러, 370억달러 증액시켜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질 경우 시퀘스터에서 정한 지출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확장 예산을 통해 임금 정체와 빈부 격차에 시달리고 있는 중산·서민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년제 대학 무상교육 실시, 자녀양육 보조금 확대, 교육 관련 세금 공제 확대, 유급 병가 및 실업수당 확대, 근로장려세(EITC) 확대 등이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또 사회기반시설에 6년간 478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정책을 ‘중산층 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위한 재원은 부유층과 대기업, 월가에서 마련한다는 복안을 제시했다. 다국적 기업의 국외 이익에 대한 과세, 상위 1% 소득자를 대상으로 28% 자본이득세 부과, 부유층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 설정, 사모펀드 운영자들과 자영 전문직들에 대한 과세 강화, 은행세 부과 등 다양한 ‘부자 증세’ 방안들을 동원해 10년간 1조달러 이상을 거둬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예산안의 명운을 쥐고 있는 공화당 쪽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이 예산안은 국가부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을 뿐더러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시킬 세제개혁안을 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폴 라이언 하원 세출위원장은 오바마의 예산안이 부유층과 대기업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어 ‘질투 경제학’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공화당이 국방비 증액와 사회기반시설 투자 확대에는 관심이 많은 만큼 오바마와 일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공화당은 국방비 증액을 희망하면서 동시에 복지지출 감축을 원하는 반면에 오바마는 국방비와 복지지출 모두를 증액하길 원한다”며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예산안은 실제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2016년 대선과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부통령의 경제자문관이었던 재러드 번스타인은 <뉴욕 타임스>에 “이 예산안은 이상적 문서로 우리가 정부의 역할에 관한 큰 철학적 담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한해 예산안이라기보다는 마음 속에 대어를 품고서 논쟁의 틀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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