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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 바버라 부시가 지난 5일 휴스턴 구호센터를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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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 “부시, 지도력 복원이 허리케인보다 힘들 것”
“조지 부시 대통령은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를 복원하는 것보다, 훼손된 자신의 지도력을 복원하는 게 더 힘들지 모른다.”
9월16일 부시 대통령이 뉴올리언스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카트리나 피해복구 청사진을 제시한 직후, <시비에스방송>의 정치 전문기자 빌 플랜트는 이렇게 논평했다.
카트리나가 무너뜨린 건 뉴올리언스만이 아니다. 허리케인 참사 이후, 부시 정권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휘청거리고 있다. 정권 위기의 신호인 인사 실패와 부패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카트리나 책임을 진 연방재난관리국(FEMA) 국장 경질과, 역시 각료급 기관장인 식품의약국(FDA) 국장의 갑작스런 교체는 부시 행정부 인사 난맥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시엔엔>은 “연방재난관리국장에 이어 식품의약국장이 2개월 만에 의문의 사퇴를 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지도력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9월19일엔 연방정부 조달업무를 총지휘하는 백악관 행정관리예산국장이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공화당 로비스트인 잭 아브라모프 수사를 방해한 혐의였다. 아브라모프는 공화당 중진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걸로 알려져 있다.
뇌관은 또 있다. 중앙정부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언론에 흘린 고위관리를 찾아내려는 ‘리크게이트’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유력한 용의자로 부시의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루이스 리비 부통령실 비서실장이 떠오른다. 둘다 백악관의 핵심 실세들이다. 둘중 하나라도 연루설이 확인되면 백악관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강력한 장악력의 부시 지도력에 무슨 일이 생겼나?
뭐가 잘못된 건가. 강력한 장악력을 자랑하는 부시의 지도력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이후의 상황은 2001년 9·11 동시다발테러 직후와 곧잘 비교된다.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던 그 시각,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있었다. 교육정책 홍보를 위해서였다. 그는 초등학생들에게 ‘염소이야기’란 책을 읽어주던중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으로부터 테러 보고를 받는다. 그는 그러나 7~18분간 책읽기를 계속하고서야 교실을 떠났다. 지난해 대선 때 부시의 이런 행동은 민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너무 안이하게 행동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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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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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카트리나가 상륙한 올 8월29일에도 부시는 백악관에 있지 않았다. 그는 애리조나의 시골마을 공청회에 참석했다. 노인의료보험 정책을 홍보하는 자리였다. 그는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지사와 협조를 잘하고 있느냐”는 부시의 질문에 처토프는 “물론입니다. 각하”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주지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한 루지애나의 주지사가 아니라 애리조나 주지사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부시는 허리케인에 대한 얘기는 단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9.11 때와 카트리나 때 부시 행동은 유사점과 차이
2001년 9·11과 2005년 카트리나 때의 부시 행동엔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부시는 9·11 보고를 받고 즉각 학교를 빠져나오지 않은 데 대해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대응했다. 그의 설명은 미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 숱한 비판 속에서도 여론은 부시의 침착함과 대범한 위기대응능력에 더많이 쏠렸다.
이번엔 달랐다. 부시는 만 하루가 지나서야 비로소 카트리나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황급히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부시 뿐 아니라 백악관 참모들 전체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의 너무 지나친 자신감과 참모들의 안일함이 여기엔 깔려 있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부시 정권의 폐쇄성과 측근 중심의 정실인사가 지금의 지도력 위기를 가속화한다고 비판한다. 피아가 분명한 테러 상황에선 소수의 핵심측근들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신속함과 결단력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국내 사안을 다루는 데서 폐쇄적인 의사소통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걸 방해한다.
부시의 리더십 스타일은 흔히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자기 신념에 투철하고 작은 부분보다 큰 그림에 집중한다. 그리고 한번 결정되면 뒤돌아보지 않고 밀고 나간다. 그러나 레이건과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보수주의 운동가인 리처드 비거리는 말했다. 그는 “정적들까지 포용하는 레이건과 달리, 부시는 항상 친구나 강력한 지지자만을 기용한다”고 말했다.
“큰 것만 챙기는” 레이건닮은 부시 스타일, 그러나 레이건과의 결정적 차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상황악화와 국내 휘발유값 폭등의 상황에서도 무려 5주간이나 긴 여름휴가를 텍사스 크로퍼드목장에서 보낸 것도 안일함의 대표적 사례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현 국무장관은 1기 때 “백악관의 축은 대통령이다. 그는 여론조사 결과나 매일매일의 신문 헤드라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부시를 칭찬한 적이 있다. 그러나 큰 것만 챙기고 휘발유값 같은 ‘작은 사안’을 돌보지 않는 부시의 태도는 “고집스럽고 게으르다”는 비판을 불러일킨다.
부시 정권의 폐쇄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부시는 정권 핵심부에서 여러 이견이 나타나는 것보다는 하나로 모아진 의견을 보고받는 걸 좋아한다. 프레드 그린스타인 프린스턴대 정치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부시의 리더십 스타일은 정부내 정책사안이 표류하는 걸 허용치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너무 단순화되거나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정책 집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타임>은 “부시는 아버지 부시와는 달리 정부내 깊숙한 내부에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채널’을 통해서만 보고를 받는 걸 좋아한다”고 밝혔다.
‘검증된 채널’이란 부시의 측근그룹, 특히 텍사스 사단을 말한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비텍사스 출신 인사들이 일부 있지만, 이른바 ‘이너서클’(실세그룹)의 다수는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인물들이다. 부시는 2001년 집권 때부터 텍사스 시절의 측근들을 대거 백악관과 정부 주요 부처에 기용했다. <에이피통신>은 이것을 부시의 지역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선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을 기용하는 게 편하다고 느끼는 부시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부비서실장인 칼 로브를 비롯해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 해리엇 마이어스 법률고문 등이 백악관에선 대표적 텍사스 사단이다. 내각엔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장관과 마가렛 스펠링 교육장관, 캐런 휴즈 국무부 차관 등이 포진해 있다. 공화당 전국위 의장인 켄 멜먼 역시 텍사스 사단으로 통한다.
재선 이후 측근 의존 더 심해져
부시 대통령의 측근 의존은 집권 2기에 들어서 더 심해졌다. 지난해 대선 승리는 이너서클 중심의 국정운영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그는 곤살레스 백악관 법률고문과 스펠링 국내정책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 측근들을 대거 내각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 해리엇 마이어스(법률고문) 등 가까운 인사들로 채웠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새 식품의약국 국장 앤드루 에스첸바흐도 부시 가문의 오랜 친구이자 텍사스 출신이다.
능력보다 연줄에 따른 고위직 채우기는 정부 의사결정 시스템과 위기 대응능력을 떨어뜨린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타임>은 “카트리나 때 캐서린 블랭코 루지애나 주지사가 부시 대통령과 전화연결을 하는 데 수시간이나 걸렸다. 검증된 채널만을 통해 보고를 받는 방식은 일이 잘 풀릴 때는 괜찮지만 위기 때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1기 행정부에서 환경보호국장을 지내다 백악관과의 잦은 마찰로 2003년에 그만둔 크니스틴 휘트먼은 부시 측근들을 ‘근위병’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의 위기가 부시 정권의 레임덕 시작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진보 성향 칼럼니스트 이 제이 디온은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2001년 9·11에서 시작한 부시의 시대는 카트리나로 막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일레인 카마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초빙교수도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부시의 백악관이 행정부 장악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 리 에드워즈 박사는 “부시가 어렵긴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일이다. 여전히 의회에선 공화당이 다수당이다”라고 래임덕 주장을 일축했다. 며칠 전 존 로버츠 대법원장 인준투표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전원(55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그런 예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존 로버츠는 보수 성향이 분명한, 공화당 의원들이 좋아하는 인사였다. 논란이 있는 일반 정책에서도 공화당 의원들이 일사분란함을 보여줄 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재선 취임연설에서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집권 2기의 가장 중요한 국내정책 어젠더로 제시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하다. 일부 의원들은 부시 행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에 노골적인 우려를 보이고 있다. 또다른 의원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뉴올리언스를 재건하겠다는 부시의 카트리나 복구정책이 “공화당 이념과 어긋나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시한다.
특히 최근 톰 딜레이 하원 원내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대표직을 사임하고 빌 프리스트 상원 원내대표 역시 주식 내부자거래 혐의로 증권당국의 조사를 받는 상황은 공화당엔 매우 안좋은 소식이다.
9.11 때 만들어진 부시 이미지, 카트리나에 결정적으로 훼손
최근 부시는 리더십 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휘발유값 폭등과 관련해 백악관의 기름 소비를 줄이겠다는 등 좀더 국민에게 친근한 문제에 다가서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권력이란 축구공과 달라, 어느 때든지 맘대로 공기를 주입할 수 없다. 한번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되돌리긴 매우 어렵다.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 소장 앤드루 코헛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인터뷰에서 “그의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는 9·11 직후라는 결정적 시기에 만들어졌다. 또다른 결정적 시기인 지금(카트리나 참사 이후) 이 이미지는 현저하게 훼손됐다. 현란한 수사만으로 이런 상황을 바꾸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부시에겐 자꾸 제동이 걸릴 것이다. 그의 남은 임기를 위해선 뭔가 성취해야 한다. 멕시코만 복구가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 이런 건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말했다.
워싱턴/<한겨레> 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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