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따로 만나 지난해 12월 합의한 양국관계 정상화의 구체적 현안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나라는 지난해 12월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으며, 두 나라 정상의 회동은 1959년 쿠바혁명 이후 처음이자, 1956년 이후 59년 만이다. 파나마시티/AP 연합뉴스
오바마 “이견 딛고 서로 존중”
카스트로 “인권 등도 논의” 화답
쿠바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등
국교정상화 ‘구체적 합의’ 없어
카스트로 “인권 등도 논의” 화답
쿠바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등
국교정상화 ‘구체적 합의’ 없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1일(현지시각)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으로는 59년 만에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만남을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표현하는 등 두 정상은 양국 관계정상화를 향한 의지를 명확히 했다. 두 정상은 이견을 딛고 미래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두 사람의 결론은, 우리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자는 것이다”라며 “우리가 역사의 한 장을 넘겨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개척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우리는 인내를 갖고 모든 것을 말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동의하는 것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바는 인권이나 언론자유 등과 같은 문제들을 기꺼이 논의할 것이라고 미국에 이미 말했다며, “모든 것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쿠바의 인권 상황 개선 문제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과 쿠바 정상의 만남은 1956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풀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대통령의 회담 이후 59년 만이자 1961년 양국의 국교단절 이후 처음이다. 두 정상은 이날 미주기구 정상회의가 열린 컨벤션센터에서 각국 정상들의 연설이 끝난 뒤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았으며, 대화는 80분 넘게 이어졌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 만남은 두 정상이 지난 8일 전화통화를 하면서 성사됐다.
앞서 이날 정상 연설에서 카스트로 의장은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적대 행위는 미국 대통령들의 책임”이라고 비난했으나, 오바마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에선 “오바마 대통령은 거기에 책임이 없기 때문에 내가 사과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냉전은 오랜 전에 끝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된 싸움에 솔직히 관심도 없다”고 화답했다.
이날 회동은 양국 정상의 화해 의지와 함께 험난한 장애물도 확인한 자리였다. 이날 회동에서 양국 국교 정상화를 진척시킬 수 있는 의미있는 합의는 없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던 쿠바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에 대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국무부의 최종 권고안이 “아직 나한테 넘어오지 않았다”면서도 “상황이 바뀌게 되면 테러지원국 명단 역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선언한 지 4개월이 지나고 있으나, 국교정상화를 위한 양국의 고위접촉은 아직 예상만큼 속도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쿠바는 미국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쿠바에 ‘인권 상황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 회동은 국교정상화 진전에 새 동력을 마련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국가 모두에게 미국의 달라진 중남미 정책을 보이려는 목적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추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국내 보수파와 쿠바 이민자들의 반발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주기구 정상회의 개막 전날인 10일 미국으로 이민온 쿠바 반체제 인사들과 회동했다. 플로리다 등에 포진한 쿠바 출신 이민자 사회는 1959년 쿠바 사회주의 혁명 이후 미국의 쿠바 정책의 핵심 요소였으며, 강력한 이익집단으로 떠오른 상태다.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는 또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이란 핵협상 등 다른 적성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벤자민 로드 백악관 안보 담당 부보좌관은 이날 “우리의 쿠바정책은 쿠바를 고립시키기보다는 우리의 뒷마당에서 미국을 고립시켜왔다”며 “이번에 우리는 우리 대통령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여기에 온 (미주 각국의) 지도자들과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쿠바 정책 변화가 쿠바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 모두에 대한 변화의 시작임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가 국내의 반발을 헤치고 얼마나 이를 잡음 없이 추진하냐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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