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파나마 국경 지역인 구나얄라 원주민 특구의 한 마을에 있는 불법이주민 임시수용소에서 파나마 국경경비대 대원이 경비를 서고 있다.
구나얄라/신화 연합뉴스
“지구상에 탐사 안된 마지막 지역”
원시 정글과 마약 조직의 근거지
밀림 뚫어도 강도에 목숨잃기 쉬워 누가 목숨 거나
‘가난·전쟁’ 남아시아·아프리카인들
미국 가기 위해 지난해 2배 이상 몰려
“돌아가느니 차라리 정글서 죽겠다” 왜 새 루트 택했나
관광비자로 입국뒤 불법체류하는
‘전통적 경로’ 어려워져 먼 길 돌아
브라질 등 출입 문턱 낮아진 이유도 ■ 미국 향해 목숨 건 ‘정글 만리’ 이런 거칠고 험한 지역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불법 이주자들의 새로운 경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세계 전역의 이주자들이 미국에 닿기 위해, 독사와 흡혈박쥐와 강도를 만날 위험을 무릅쓰고 다리엔 갭으로 몰려온다”고 보도했다. 이곳을 통과해 미국으로 가는 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만큼 무모한 여정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드는 이들은 최근 몇년 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파나마 이주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2013년 이곳을 통해 파나마에 들어온 불법이주자는 3078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7278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 3월까지만 3800여명에 이른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열대밀림의 환경은 험악하기 짝이 없다. 콜롬비아 마약 밀매조직이 활동하는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곳을 무사히 통과해 파나마에 도착하는 사람 대부분은 무일푼이 된다. 마약조직이나 무장강도를 만나면 목숨 건지기도 쉽지 않다. 정글 지역의 한 장묘 일꾼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배를 타고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던 강도들에게 살해당한 뒤 물에 버려진 소말리아인들의 주검 10여구를 묻었다고 밝혔다. 간신히 살아나와도 콜롬비아 국경검문소에서 추방을 미끼로 현금에서부터 시계와 휴대폰까지 돈 될 만한 것은 다 털리기 일쑤다. 미국 밀입국에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고, 치러야 할 대가는 턱없이 높다.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정글로 찾아드는 이들은 대부분 네팔,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등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다. 미국을 지척에 둔 쿠바인들도 상당수다. 막연한 희망과 실질적 위협이 뒤엉킨 여행은 대부분 국제 불법 이주조직과의 밀거래로 이뤄진다. 항공료, 육상교통비, 정글 수로를 이용할 경우 뱃삯, 중남미 나라들의 국경을 통과할 때 줘야 할 뇌물, 브로커 비용까지 한 사람당 수천달러의 돈이 필요하다. 수중의 모든 현금과 패물을 긁어모으고 주변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법 이주자들은 높은 비용을 치러가며 기약 없는 모험에 나선다. 자국에선 아무런 삶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소개한 아메드 하산(26)의 사연은 불법 이주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소말리아에서 트럭 운전을 했던 하산은 지난해 11월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밥의 강제 징병을 피해 새벽 2시에 집을 떠났다. 아내와 부모에게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겠다고 했다. 잠든 두살배기 딸의 볼에 입맞추는 그에게 아내는 흐느끼며 물었다. “언제 돌아올 건가요?” 수도 모가디슈에서 케냐를 거쳐 브라질로 가기 전에, 자신이 도망친 사실을 안 알샤밥 조직원들이 고향의 칠순 아버지를 무참히 두들겨 팼다는 소식을 들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하산은 파나마의 한 불법이주자 구류시설에 발이 묶였다. 미국은 아직도 4500㎞나 멀리 있지만 닿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지난 3월에 발을 들여놓은 다리엔 갭의 정글 지대를 무사히 빠져나온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그는 “마실 물은 없고 뱀들만 우글거렸다. 정글에서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다. 너무나 힘들어서 ‘소말리아를 떠나오지 말걸’ 하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 가난·전쟁·재난 벗어나고파 험한 정글을 겨우 빠져나와도 파나마 국경경비대에 체포되면 수도 파나마시티의 구류시설에 수용됐다가 출국 명령을 받는다. 운좋게 이런 고비를 피해 파나마 관문을 통과해도 ‘꿈의 나라’ 미국까지는 천리길 하세월이다. 파나마에서 다시 북쪽으로 코스타리카~니카라과~온두라스~과테말라를 거쳐, 멕시코 북부 소노라 사막을 건너 국경지대까지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멕시코-미국 국경선은 삼엄한 경비와 거대한 철책으로 막혀 있다. <알자지라 아메리카> 방송은 지난달 다리엔 갭 불법이주자 실태를 다룬 보도에서, “가난과 전쟁과 온갖 재난에서 탈출해 한곳의 목적지 ‘북미’로 가려는 열망을 갖고 몇 달 동안 여러 개의 대륙을 지나 끔찍한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다리엔 갭 통과는 그저 또 하나의 경유지일 뿐”이라고 전했다. 모두가 꿈꾸는 최종 목적지는 미국이다. 9개월 전에 고향을 떠나온 남아프리카 출신 청년 라힘(가명·21)은 이 방송에 “모두가 미국에 가길 원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나마까지 오기 전 한동안 브라질에서 막노동을 하며 여비와 뇌물로 쓸 돈을 다시 벌어야 했다. 다리엔 갭의 컴컴하고 질척거리는 정글에서는 같은 길을 앞서가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뒤 썩어가는 주검도 봤다. 그는 “정말 힘들었다. 불안하고, 가족이 그립다. 몸무게가 쑥 빠졌고, 힘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 다시 무일푼이지만 미국 뉴욕의 흑인 이주자 사회에 합류할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의 미국행은) 고향의 가족들이 내게 돈을 부쳐줄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밀입국 이주자들은 왜 이토록 멀고 험한 우회로를 선택할까?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이주정책연구소의 마크 로젠블룸 부소장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미국에 (관광) 비자 등으로 입국한 뒤 체류기간을 넘기는 전통적인 경로로는 더이상 미국에 들어오기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먼 길을 돌아갈수록 위험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파나마 국경경비국의 프랑크 아브레고 국장은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덥고 습한 곳 중 하나인데, 다리엔 정글을 건너오는 사람들은 (이곳을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소말리아 출신의 20대 난민 남매는 다리엔 갭을 지나오던 중 콜롬비아인 가이드가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6일 동안이나 굶주림과 공포에 질린 채 정글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미국행 밀입국을 시도하는 이들은 그것만이 자신과 가족을 구원해줄 마지막 밧줄이라고 믿는다. 지중해 바닷길 장벽을 갈수록 높이고 있는 유럽보다는, 미국에선 그나마 유엔이 규정하는 ‘난민’ 지위와 일자리를 얻기에 더 유리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다. 미국은 지금도 세계 1위의 이주자 수용 국가다.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파나마까지 온 20살 여성도 정글에서 길을 잃고 열흘 넘게 헤매다 구조돼 추방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는 “기니에선 강제로 결혼을 해야 했고, 에볼라도 무서웠다”며 “그래도 기니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정글에서 죽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롬비아와 접경국인 브라질과 에콰도르의 출입국 문턱이 낮아진 것도 콜롬비아-파나마 국경지대를 거쳐 미국으로 가려는 밀입국자 증가에 한몫했다. 두 나라는 2008년부터 모든 관광객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집계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만 난민 신청을 한 이주자들의 수가 2010년 566명에서 2013년에는 5882명으로, 3년 새 무려 10배나 급증했다. 밀입국자 대부분의 법적 지위가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도 문제다. 일단 남미 대륙에 들어온 뒤 몇달씩 체류하면서 여권과 비자를 폐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브로커들이 불법 이주자들에게 ‘비자 만료 기간이 지난 뒤 출입국 당국에 적발되면 추방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데서 벌어지는 희비극이다. 남미 각국은 이들을 임시 난민수용소에서 보호하면서 지문을 채취하는 등 테러 용의자는 아닌지 확인한 뒤, 난민 판정 또는 추방 절차를 밟는다.
2013년 7월 파나마 국경경비대 대원들이 다리엔 정글 지대에 있는 코카인 제조 시설을 급습해 파괴하고 있다. 이 지역을 지나는 불법 이주자들은 마약조직에 재물과 목숨을 빼앗기기도 한다. 다리엔/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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