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기행으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당내 주류들이 드디어 공격에 나섰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와 대선 주자들은 21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베트남전 포로 경험을 조롱한 트럼프에 대해 일제히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가 막말을 앞세운 ‘노이즈 마케팅’으로 경선에서 선두주자로 나서는 상황을 방치한다면 공화당이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18일 아이오와 경선 유세에서 매케인 상원의원이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인 것은 의문이다”라며 “나는 포로로 잡히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공화당 전국위는 21일 대변인 션 스파이서의 트위터를 통해 “명예롭게 국가에 봉사했던 사람들을 폄하하는 발언은 우리 당과 우리나라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경선에서 중립을 지키는 전국위가 이런 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젭 부시도 이날 “중상비방적인 공격은 이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남겼다. 맥케인의 절친한 친구인 린지 그레이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트럼프가 내가 아는 사람들을 모욕할 선을 넘었다”며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너는 끝났어’라는 메시지만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끝났어’라는 말은 트럼프가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즐겨쓰던 발언이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매케인은 동료가 함께 석방되지 않게 되자 악명높은 포로수용소에서 조기 석방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다”며 “그런 사람을 비난한 것은 트럼프가 최고사령관이 될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애초 “멕시코 이민자는 강간범”이라는 트럼프의 문제 발언에 대해서는, 공화당 주류들은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당내 보수세력의 심기를 고려해 별로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케인에 대한 조롱은 공화당의 애국보수주의 가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보고,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트럼프는 사과는 커녕 <유에스에이투데이> 기고를 통해 “존 매케인이라는 정치인이 우리의 병사들을 잘못된 해외 모험에 파견해 미국을 안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며 “그는 애리조나 국경선을 지키기보다는 이라크 국경선을 지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20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와 <에이비시>(ABC) 방송의 공동 전국 여론조사에서 24%의 지지로 당내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트럼프 거품’이 꺼질 때가 됐다는 시각도 많다. <뉴욕타임스>의 선거전문 기자 네이트 콘은 “트럼프의 지지도는 언론의 관심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거품”이라며 “매케인에 대한 조롱은 그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불러 곧 거품이 꺼질 것이다”고 예측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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