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에 도착해 승리 연설을 하기 앞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트럼프와 연인, 부하직원 등 여성 지인 50여명 인터뷰한 NYT
외모 품평·낯뜨거운 발언·경멸적 애칭 등 부정적 기억 대부분
외모 품평·낯뜨거운 발언·경멸적 애칭 등 부정적 기억 대부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온, 억만장자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이나 사생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뉴욕 타임스>가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공화당 경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폭스 뉴스> 여성 앵커인 매긴 켈리가 여성들을 “뚱뚱한 돼지” “개” “역겨운 동물”이라고 부르지 않았냐고 지적하자, 다음날 트위터에 ‘머리가 빈 섹시한 여자’라는 뜻의 “빔보”(bimbo)라고 비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뉴욕 타임스>가 트럼프와 연인, 상사-부하직원 관계로 지냈던 여성들과 지인 등 50여명을 인터뷰해 보도한 기사를 보면, 트럼프는 부동산업자로 활동해온 지난 40년 동안 직장에서, 파티에서, 모임에서, 일상적으로 여성을 비하했다. 트럼프는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내키지 않는 로맨틱한 관계를 강압하거나, 공개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놓고 품평했다.
모델 출신의 로완 브루어 레인은 26살이던 1990년 트럼프의 플로리다주 저택인 마라라고의 수영장 파티에 초대받아 갔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44살의 트럼프 앞에서 비키니 수영복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고 <뉴욕 타임스>에 털어놨다.
“수영장에는 50명의 여성 모델과 30명의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트럼프는 나한테 홀딱 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나하고만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트럼프는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저택 내부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한테 ‘수영복이 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를 방안으로 데려가더니 서랍장을 연 뒤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비키니였고, 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트럼프는 ‘와우’라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트럼프는 레인을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정말 끝내주는 트럼프의 여자예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소개했다. 당시 트럼프는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 상태였다. 레인은 몇달 동안 트럼프의 연인으로 지냈다.
트럼프가 다녔던 뉴욕군사학교는 ‘금녀의 집’이었지만, 아주 특별한 행사 때는 여자친구를 초대할 수 있었다. 이런 행사 때면 트럼프는 학교에 데려올 여자 친구 선정에 상당힌 신경을 썼다고 당시 동기생인 조지 화이트는 신문에 밝혔다. 화이트는 “트럼프는 자신이 초대할 여성이 예쁜지에 대해 아주 민감했다. 트럼프에게 그것은 일종의 디스플레이였다”고 회고했다. “트럼프는 똑같은 여성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여성을 데리고 왔습니다. 특히 그는 아주 예쁘고, 세련되며 잘 차려입은 여성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상류층 여성처럼 보였습니다.”
트럼프는 여성을 대하는 ‘롤 모델’로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의 영향 속에서 성장했다. 프레드는 아무리 크든 작든 모든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이바나 젤닉코바는 뉴욕 센트럴 파크 근처의 화려한 식당 ‘타번 온더 그린’에서 트럼프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 ‘실수’를 했다. 웨이터에게 이바나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자, 프레드는 그녀의 실수를 ‘바로 잡아줬다’고 미발간된 <트럼프의 진실>에서 밝혔다.
“프레드는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그러면 도널드도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모든 사람이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나는 웨이터에게 ‘생선류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프레드는 ‘아냐, 이바나는 생선이 아니라 스테이크를 먹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에요, 생선을 먹을거에요’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집에 와서는 ‘이바나, 왜 스테이크 대신에 생선을 먹겠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아버지의 행동을 무조건 옹호하고 그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프레드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차별을 숨기지 않았다. 1980년대에 도널드 트럼프가 건설현장의 책임자로 여성인 바버라 레스를 고용했을 때 당황스러워하고 분노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여전히 그의 부모들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집에만 있는’ 그의 어머니를 칭찬한다.
트럼프는 1996년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를 인수해 매년 미스 유니버스, 미스 유에스에이(USA) 등의 미인대회를 열었는데, 1997년 유타주의 미인대표였던 템플 타거트(당시 21살)은 치욕적인 경험을 했다고 한다. 타거트는 <뉴욕 타임스>에 이렇게 증언했다.
“트럼프가 제 입술에 그대로 키스를 했습니다. 그가 (두번째 부인인) 말라메이플스와 결혼 상태였을 때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키스한 여성이 나 말고도 또 있을 것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은 모르는 사람에게 키스할 때는 머뭇거린다며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타거트는 트럼프의 행동이 일회성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갈라 쇼를 마친 뒤 트럼프는 그녀에게 관심을 집중하며 그녀의 스타일을 너무 좋아해 뉴욕으로 초대해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트럼프의 초대로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아갔을 때에도 타거트는 ‘기습 키스’를 받았다.
2009년 캘리포니아주 미인대표였던 캐리 프리진도 그해 ‘미스 유에스에이(USA) 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수영복만큼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서 트럼프 앞에 줄지어 서있던 경험을 말했다.
프리진은 “트럼프는 한 참가자 앞에 멈춰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흠’이라고 했으며, 그 옆에 서 있던 참가자에게도 똑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스 앨라배마’를 불러낸 트럼프는 “누가 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가”라고 물은 뒤 그녀가 “‘미스 아칸소’가 사랑스럽던데요”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나는 그런 것 상관 안한다. 그녀는 뜨거운가?‘라고 되물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이날 경험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프리진은 말했다. 일부는 트럼프가 떠난 뒤 무대 뒤에서 훌쩍였다.
트럼프의 다른 면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는 부동산회사를 경영하면서 충성심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 몇몇 여성들을 파격적으로 간부로 기용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했다. 1980년대 트럼프타워 공사 총감독으로 여성인 바버라 레스를 임명할 때, 트럼프는 그녀에게 “좋은 여성 한 명이 남자 10명보다 낫기도 하다”고 격려했다.
트럼프의 회사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한 여성들은 그를 너그럽고, 용기를 주는 상사로 묘사하기도 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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