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우리는 모두 피를 흘리고 있다”라는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 21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0대 여성이 33명의 남성에게 집단으로 성폭행 당한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열렸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33명이 10대 소녀에 몹쓸짓
동영상에 여성혐오 댓글까지
잔악한 범죄에 시민들 격분
테메르 대통령 대행, 전담팀 꾸려
동영상에 여성혐오 댓글까지
잔악한 범죄에 시민들 격분
테메르 대통령 대행, 전담팀 꾸려
“우리가 이 여자애 쓰러뜨림. 무슨 말인지 알겠냐? ㅎㅎㅎ.”
지난 25일, 브라질의 한 트위터 계정에 위의 글과 함께 40초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옷이 벗겨진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담겼다. 총 550여개의 ‘좋아요’ 수를 얻고,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비롯해 여성혐오적인 댓글이 달린 이 글의 계정은 몇 시간 뒤 삭제됐다. 그러나 33명의 남성이 16살의 미성년자 여성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뒤 찍은 이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퍼졌고, 사건이 알려지자 브라질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브라질 경찰은 수사를 시작한지 이틀째인 28일 이번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을 체포했다고 <에이피>(AP)등 외신이 보도했다. 피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 21일 새벽 리우데자네이루 서부의 상주앙에 있는 남자친구의 집에 방문했는데, 정신을 잃었다가 이튿날 일어나보니 권총을 든 남성들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피해자가 찍힌 동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라며 가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권한대행도 공식 성명을 내 “21세기에 이러한 끔찍한 범죄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며 성범죄를 전담하는 팀을 경찰 조직 안에 꾸릴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잔혹성이 드러나면서 브라질 시민들의 분노도 거세졌다. 27일 오후 리우데자네이루의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백여명의 시위대들이 모여 ‘내 몸은 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피를 흘리고 있다’라는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들고 정부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온라인에서도 ‘성폭행 다시는 안돼’라는 의미의 해시태그와 함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누리꾼들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브라질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피해 여성도 당당하게 나섰다. 이 여성은 브라질 신문 <오 글로보>와의 인터뷰에서 “강도를 당한 사람을 강도를 당했다는 이유로 욕하진 않는다”며 “이런 범죄가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을 통해 “아직 처벌을 받지 않은 잔인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몸보다는 영혼이 더 고통스럽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한 브라질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라질 여성학자인 스테파니 히베이루는 브라질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30여명의 남성은 단순히 성폭행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성의 사진을 찍고, 그걸 온라인에 올려 희롱하면서 자신들의 범죄를 흡족하게 여겼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2014년에 신고된 성폭행은 4만7636건에 달한다. 그러나 피해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실제 일어나는 성폭행의 35% 정도만 경찰에 신고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질의 불안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공공예산이 줄어든 것도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브라질의 치안 관련 예산은 예년에 비해 5억5천만달러(약6490억원)정도가 줄어들었는데, 이는 전체 치안 관련 예산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예산 삭감으로 인해 특히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빈민가를 중심으로 치안이 악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번 성폭행 사건도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서 일어났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