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을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필라델피아/EPA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전대) 첫째날인 지난 25일 대의원들은 대통령후보 경선 규칙 중에서 전체 대의원 수의 15%를 차지하는 슈퍼대의원을 대폭 축소하는 안을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선출직 대의원은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되며 경선 결과에 맞춰 전대에서 투표해야 한다. 이에 비해 슈퍼대의원은 주로 정당 활동가, 전·현직 연방의원, 주지사 등으로 구성되며 대선 후보 선택에서 자유 재량권을 지닌다.
샌더스 쪽은 슈퍼대의원 제도가 후보 선출에 있어서 당원들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내 주류 엘리트들이 후보를 결정하는 비민주성을 지녔다고 비판했다. (슈퍼대의원들이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경선 결과만으로 후보가 되려면 평균 60% 이상을 득표해야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슈퍼대의원 제도는 특수 이익집단 로비스트의 영향력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 조사를 보면, 현재 713명의 슈퍼대의원 중 67명이 전·현직 등록 로비스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23일부터 진행된 규칙위원회에서 샌더스 쪽은 정당 민주화를 위해 슈퍼대의원 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1인 1표’로 대의원을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텍사스 하원의원 세일라 젝슨 리는 슈퍼대의원이 소수자들의 대표성을 향상시켜 민주주의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맞섰다. 예를 들어, 1인 1표 다수대표제 아래에선 소외될 수 있는 노동·여성·소수인종·장애인·성적 소수자 등의 대표성을 슈퍼대의원 제도가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지배를 보장하는 절차적 민주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견제와 균형, 그리고 정치적 다양성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라고 옹호론자들은 주장했다.
결국, 교착과 협상을 반복한 끝에 양쪽은 현재의 슈퍼대의원 숫자를 1/3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타협을 보았다. 클린턴 진영 대표 9명과 샌더스 진영 대표 7명, 그리고 민주당전국위원회가 임명한 3명 등 총 19명의 통합개혁위원회(unity reform commission)가 구성돼, 내년 1월까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샌더스의 선거본부장인 제프 위버는 ‘샌더스 운동의 위대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정당 민주화와 당의 기율 사이에서 세련된 균형을 도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의 슈퍼대의원 제도 기원은 1968년 대통령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허버트 험프리 후보가 단 한번의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서도 후보직을 거머쥐자, 1970년 대의원 선출 권한을 전적으로 당원들에게 부여하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1972년과 1980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 당원들이 선택한 대선후보가 너무 진보적인 후보에서 보수적인 후보 등으로 널뛰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지도부는 1982년 평당원의 열정에 엘리트들의 훈련된 경험과 지혜를 결합시키는 개혁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선출직 대의원과 비선출직 대의원인 슈퍼대의원을 결합시키는 혼합안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민주당 전대는 풀뿌리 당원들의 권력을 좀 더 강화하는 쪽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5% 내외의 슈퍼대의원을 남겨놓음으로써 당의 역사와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당내 주류들의 절박함도 일정하게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