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된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1일 브라질리아의 알보라다 대통령 궁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브라질판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상원에서 탄핵됐다. 지난 5월 탄핵 심리가 개시된 지 3개월 만이다. 브라질은 리우올림픽도 대통령 없이 치렀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으로 주목받았던 만큼이나 불명예스러운 퇴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도 극적이다. 호세프는 2014년 집권여당인 ‘노동자당(PT)’의 대선후보로 56%의 득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놀랍게도 대통령 선거는 그의 첫 선거였다. 브라질의 에너지·수석장관직을 역임했지만, 선출직으로 나서 본 적은 없었던 까닭이다.
젊은 시절에는 반정부 게릴라였다. 1960년대 브라질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3년간 복역했다. 2003년 룰라 대통령이 집권하며 정권 교체를 이뤄낸 뒤, 에너지장관으로 브라질 내각에 발을 들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강경한 투사 이미지가 강했다. 브라질판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룰라 대통령의 뒤를 이어 2010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바지 대신 치마를 입고, 서민 경제를 챙기는 행보를 보였다. 당시 여당의 다른 유력 대선주자들이 잇따라 비리 사건에 휘말려 물러나는 ‘운’도 따랐다. 보수적인 카톨릭 국가이고 의회의 여성 비율이 10% 선에 그치는 브라질에서는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의 당선엔 퇴임을 앞두고 지지율 80%를 기록했던 룰라 전 대통령의 후원이 큰 도움이 됐다. 룰라 전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당선됐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룰라 전 대통령이 연임으로 집권한 8년 동안 브라질은 막대한 경제성장을 기록했는데, 취임 이전인 2002년 2.7%에 머물렀던 경제 성장률은 2010년 7.5%로 뛰어올랐다. 적극적인 분배 정책을 통해 빈부 격차를 완화하고 중산층을 키운 것도 경제성장과 인기를 동시에 잡은 요인이었다. 룰라는 3선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2010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호세프 대통령을 키운 것이 룰라였다면, 발목을 잡은 것도 룰라였다. 퇴임 이후 집권여당의 비리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다. 룰라 집권 당시 브라질 최대 국영 에너지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자금을 분식회계를 통해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에너지장관으로 정권 핵심인사였던 호세프 또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호세프는 또 대선을 앞두고 재정적자를 감추기 위해 브라질 국책은행의 자금을 불법 전용해 흑자인 것처럼 속였다는 의혹도 받았다. 지난해 10월 브라질연방회계법원이 호세프의 국책자금 불법유용 혐의(재정회계법 위반)에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연방하원에서는 탄핵 특위가 꾸려졌다.
호세프 대통령은 2016년 3월 룰라를 수석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탄핵 정국’을 돌파하려 했다. 룰라가 장관으로 임명되면 룰라의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다. 하지만 장관이 되면 ‘면책특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비리 혐의를 꼼수로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와중에 호세프가 룰라에게 수석장관 자리를 제의하는 통화 녹취록이 브라질 사법부에 의해 폭로되면서 여론의 역풍이 일었다. 룰라는 장관직을 정지당했고, 호세프는 외통수에 몰렸다.
2016년 4월 17일, 브라질 하원은 하원의장의 주도로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했다. 재적 의원 513명 중 367명이 찬성(가결정족수 342명)하며 탄핵안은 상원으로 올라갔다. 탄핵안은 상·하원에서 각각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호세프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됐고, 그러면서 리우올림픽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31일 브라질 상원에서 탄핵을 결정짓는 표결을 하며 최종적으로 탄핵이 확정됐다.
호세프를 거꾸러뜨린 것은 비리 의혹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브라질의 심각한 경제 위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브라질은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자잿값이 급락한 데다, 국내에선 고금리에 소비심리 위축이 겹치며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2015년 성장률은 -3.8%를 기록했다. 1990년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 당시 기록한 -4.3% 성장률 이후 25년 만의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률이다. 브라질 실업률은 지난 7월 기준 11.6%로 치솟았다. 경제 위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재정적자를 흑자로 속인’ 대통령을 보는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중도우파인 브라질민주노동당 소속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에 1일 취임했다. 브라질민주노동당은 집권노동자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해 왔지만, 부패 스캔들이 커지며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호세프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며 브라질민주노동당 의원 상당수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다. 탄핵안도 브라질민주노동당 소속인 하원의장이 주도했다. 그러나 후임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도 회계부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탄핵을 주도한 상·하원 의장들도 비리의혹의 당사자여서 정치적 후폭풍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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