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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인종차별한다 욕하지 마라, 난 인종정치주의자일 뿐

등록 2016-11-13 13:57수정 2016-11-14 09:06

날 모르는 게 가장 큰 위험이라고?
잘 들어~ 난 인종차별주의자 아냐
미국서 백인들은 사회경제적으로
흑인·소수인종보다 우월하지 않아
왜 백인들 위한 정치는 없는 거야

백인들이 한 인종정체성 투표는
공격적이 아니라 방어적인 거야
내가 당선될지 알았냐고? 노!
백인·저학력·남성·비도시에서의
공화당 지지 과소평가한 거지

선거 유리하게 운용한 점도 있지
시골 공화당원들 활약 덕도 봤지
투표율 낮아진 게 내겐 이득이었어
결국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반이민’
오랜 포퓰리즘 전통 뒤 당선된 거야

FTA 재협상·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각오하고 제대로 준비해야 할 거야
한국이 주는 만큼 한다는 게 원칙
북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0일(현지시각) 미국 의회를 방문한 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0일(현지시각) 미국 의회를 방문한 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토요판] 특집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 기자들에게 띄우는 가상의 편지

▶ 엄청 놀라셨다고요?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다고요? 8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인종차별적인 언사로 입길에 올랐을 뿐 아니라 흑인과 여성, 소수주민계 등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과연 우리는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트럼프가 띄우는 가상의 편지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봤습니다.

어이, 나 도널드 트럼프야. 45대 미국 대통령. 당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상하려고 하지도 않았겠지만, 현실이 됐어. 내가 바쁜데도 당신들에게 한 말씀 하려는 건 너희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야. 당신 나라 대통령도 감당하기 힘든데, 이제 나까지 감당해야 하는 당신들이 불쌍해서 그래.

모두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긴 그게 어찌 당신들 잘못이겠어.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 보고 한 건데. 미국 기자들과 여론조사원들이 죽일 놈들이지.

잘난 체하면서 나를 가장 비난하던 <뉴욕 타임스>는 내가 당선되자 사설에서 ‘나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썼더군. 내가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확신하던 놈들이 갑자기 나를 모르는 게 가장 큰 위험이라고? 나의 당선에 황당해하니, 거의 정신분열 수준이야.

백인들이 기댈 언덕이 어딨겠어?

먼저 이것부터 확실히 하자고. 나를 가장 비난하는 대목인 인종차별주의 말이야. 난 인종차별주의자 아니야.

나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정치판을 기웃거렸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1995년 개혁당을 창당했지. 난 1999년에 개혁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고, 러닝메이트가 오프라 윈프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발표했어. 일방적 희망사항이었지. 근데 생각해봐.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라면 흑인 오프라를 러닝메이트로 선호했겠어?

그리고 그때 경쟁자였던 공화당 탈당 강경보수파 팻 뷰캐넌이 위험스런 인종차별 발언을 마구 쏟아내더라고. 난 그를 “아돌프 히틀러에 반한 사람”이라고 공격했지. 인종차별주의자는 자신의 인종차별주의를 꼬불칠 수는 있지만, 흑인을 선호하거나 히틀러를 공격하지는 않지. 인종차별주의자는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럼 난 뭐냐고?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인종정치주의자이지.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흑인들이 좋아하는 빌 클린턴이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도 했고, 정치자금도 냈어. 최근 미국 상황을 보고서 인종정치주의자가 된 거지. 근데, 인종차별과 인종정치가 뭔 차이가 있냐고?

차이가 있지. 당신네 나라 예를 들어 쉽게 말해보자고. 당신 나라에 지역차별과 지역감정이 있지? 근데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잖아. 지역차별은 말 그대로 차별이고 나쁜 가치이지만, 지역감정 자체는 있는 거잖아. 물론 지역감정에 기대어 차별이 있을 수는 있지. 인종차별과 인종정치도 비슷한 관계지. 난 그저 인종 문제를 나의 정치동력으로 삼았을 뿐이야.

이거 결코 인종차별이 아니야! 유럽에서 지역당이 많지? 우리 미국에서는 정당까지는 아니지만, 소수인종 이익을 옹호하는 정치단체들이 많잖아. 그럼 왜 우리 백인들을 위한 정치는 없어야 하는 거야? 물론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 하지만 이제 백인 비율이 쪼그라들고, 백인 중하류층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옛날에 비해 하락하고 있어. 현재 미국에서 백인과 비백인의 인구 비율은 70 대 30인데, 이게 2044년이 되면 백인 인구 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진다는 예측이야.

나의 당선이 소수인종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백인 유권자들의 혐오에 기댄 것이라고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얘기하는데, 이거 초점이 어긋난 거야. 그보다는 학자들이 말하는 ‘백인 정체성 정치’라고 해야지. ‘백인 정체성’은 극우주의, 백인민족주의, 혹은 인종주의, 뭐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야. 백인들이 이제 자신들의 인종적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백인들은 ‘백인이라는 타고난 정체성’과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라는 취득한 정체성’이 있었어. 그런데 미국에서 이제 백인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라는 취득한 정체성이 붕괴되고 있어. 백인이라도 자동적으로 흑인 등 소수인종보다도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하지는 않아. 그럼 백인들이 기댈 언덕이 어디겠어? 자신이 백인이라는 점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 백인 중에서도 저학력 중하류층이 나를 열광적으로 지지한 것은 이를 잘 말해주는 거야.

내가 이번 선거에서는 전국 투표에서 힐러리에게 20만표 이상이나 졌는데도 당선됐잖아!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의 맹점인데, 이는 중부와 남부 경합주를 모두 이겨 선거인단 수에서 훨씬 앞섰기 때문이지. 승패를 가른 경합주들을 잘 봐. 여전히 백인 인구가 많은 곳이지만, 흑인 등 소수주민계 유입이 늘어나는 곳이야. 인종적 정체성은 인종 비율이 변화가 심할 때 형성되지.

덴마크는 여전히 백인이 88%인 나라인데 반이민 정당 덴마크인민당이 의석 2위로 약진했어. 덴마크는 1980년에는 백인이 98%인 나라였어. 현재 반이민 운동이 극성인 독일은 2011~2015년에 외국에서 태어난 주민 비율이 무려 75%나 늘었어. 영국도 2004~2014년에 외국 태생 주민 비율이 66%나 늘었지.

내게 투표하게 한 동력, 인종정치

과거에 백인들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해에 따라 투표했는데, 이제는 인종정체성에 따라 투표하는 백인들이 늘어난다는 거지. 이거 과거 인종차별처럼 공격적인 게 아니라 방어적인 거야. 아무튼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제 백인들의 인종정체성에 기댄 정치가 시작됐다는 거야. 내가 인종주의를 호도하려고 하니, 나답지 않게 얘기를 어렵게 하며 헷갈리게 하고 있다고? 이쯤에서 끝내자고.

그럼 나는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냐고? 에이,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확고한 민주당 승리 지역으로 지목된 미시간, 위스콘신에서도 내가 승리한 걸 보고 나도 기함을 할 정도였다니까. 투표 전에는 공화당 기성 엘리트와 온건 지지층이 나를 싫어해 공화당이 분열될 거라고 했는데, 적어도 중부와 남부 경합주에서는 아니었어. 공화당 전통 지지층뿐만 아니라 투표 안 하던 백인들까지 모두 나와서 나를 찍은 거야.

여론조사가 왜 틀렸는지는 여기에서 설명이 되지. 투표 전에도 나는 백인, 저학력, 남성, 비도시, 고령층에서 지지가 우세하고, 힐러리는 소수주민계, 고학력, 여성, 대도시, 젊은층에서 우세하다는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어. 그런데 그 양극화의 양상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공화당 쪽으로 유리하게 진행된 것으로 이번 출구 여론조사에서 드러났어.

특히 백인, 저학력, 남성, 비도시 지역에서 나의 지지도가 실제로는 더 컸다는 거지. 반면 소수주민계, 고학력, 여성, 대도시 지역에서의 힐러리 지지는 여론조사에서 높게 반영됐고, 더구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번에는 오바마의 출마 때보다도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걸로 드러났어. 출구조사를 보니, 소득 4만9천달러 이하의 저소득층은 힐러리에 대한 지지가 나보다는 높기는 했지만, 2012년 대선 때 오바마 지지율보다는 낮더라고.

여론조사에서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백인 인구가 많은 주에서의 공화당 지지가 과소평가됐어. 승부는 경합주에서 1%포인트 내외의 차이로 결정됐어. 여론조사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백인, 저학력, 남성, 비도시 지역에서의 나의 지지가 실제 투표에서는 현실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지. 이렇게 보면 여론조사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의 한계에 책임을 물어야지.

내가 투표 전에 힐러리에게 유리하게 선거가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깽판치겠다고 한 거 기억나? 사실 이번 투표는 나한테 유리하게 조작, 아니 운용됐어. 시골 지역을 꽉 잡고 있는 우리 공화당원들이 소수주민계의 유권자 등록 등을 까다롭게 하고 위력시위를 벌이니, 그들이 투표장에 나올 수 있겠어? 이번 선거 투표율은 56.9%로, 2008년의 62.2%, 2012년의 58.6%에 비해 낮아졌어.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 후보가 유리하잖아. 민주당 지지자들이 승리를 예감하고 투표장에 안 나온 것도 있지만, 투표 참여를 까다롭게 한 우리 공화당원들의 노력도 있었겠지? 탈세가 아니라 절세라는 말이 있지? 선거조작이 아니라, 선거운동이라고 생각해줘.

내가 당선된 게 기성 체제와 사회 양극화에 대한 불만, 변화에 대한 갈망, 뭐 이런 것도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런 것들을 묶어서 나에게 투표하게 한 동력은 결국 인종정치였어. 백인 정체성에 기댄 백인 포퓰리즘이라고 하더군.

공화당 기성 지도부도 나쁜 놈들

내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의 시작이 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한번 보자고. 경선이 시작될 때 나는 지지율이 4% 내외로 하위권이었어. 근데 경선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지지율 1위로 올라섰지. 비결이 뭔지 알아? 간단해 반이민이었어.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공화당 지도부는 민주당이랑 이민개혁법에 합의했지. 공화당 지도부들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주민계가 늘어나니, 그 표를 얻으려 기존의 강경한 반이민 입장을 완화한 거지. 근데 이게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인 백인 중하류층의 분노에 불을 지른 거야. 나는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를 확인했어. 내가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이라고 욕하고, 멕시코 국경 장벽을 쌓겠다고 하니 반응이 폭발적이더군.

대선 후보에 출마한 공화당 지도부 인사 중 이민개혁법에서 자유로운 자가 한명도 없거든. 그자들은 맨날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기’만을 하며, 고상한 얘기만 하지. 사실 공화당 기성 지도부, 그놈들 나쁜 놈들이야.

백인 중하류층에게서 맨날 표만 가져가고, 그들을 위해 해준 거 하나도 없어. 맨날 작은 정부와 해외 군사개입, 사회복지 축소 이런 거만 밀어붙이지. 내가 반이민만 얘기한 거 아니야. 연금 등 사회복지를 지키겠다고 하고, 멍청한 해외 군사개입 안 하겠다고도 했지.

미국에도 오랜 포퓰리즘운동의 전통이 있어. 19세말~20세기초도 세계화의 조류가 있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엄청난 사회양극화가 진행됐지. 그때 인민당이 출현해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돌풍을 일으켰지. 이런 포퓰리즘운동 전통은 1960년대 중반 들어 백인 정체성에 기댄 포퓰리즘으로 이어졌지.

공화당에서 배리 골드워터가 대통령 후보가 됐고, 1968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을 탈당한 조지 월리스가 흑백분리 정책을 계속 유지하자고 주장해, 남부에서 5개 주에서나 승리했지. 1980년 대선에서는 백인 민주당원 다수가 이탈해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어. 민주당이 너무 자유주의화됐기 때문이지. 1990년대에는 내가 앞서 얘기한 대로 팻 뷰캐넌이 나타나 이런 백인 포퓰리즘을 다시 건드렸지. 2000년대에는 공화당 내에서 티파티라는 풀뿌리 보수운동이 일어나 많은 의석을 차지하기도 했어.

나의 대통령 당선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야. 그런 전통들이 드디어 무르익어 이제 나를 대통령으로까지 만든 거야. 이게 계속될 것 같냐고? 당분간 계속되겠지. 공화당은 이제 기로에 섰어. 이런 백인 포퓰리즘을 당의 주류로 인정하느냐를 놓고 엄청난 갈등과 분쟁이 생기겠지.

공화당의 진짜 주인들인 상위 1%에게 이런 국수적인 백인 포퓰리즘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거지.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표를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공화당의 기성 엘리트나 백인 포퓰리즘 둘 중 하나가 당을 떠나는 사태도 있을지 몰라.

자, 그럼 이제 지나간 일들은 그만 얘기하고 앞으로의 일을 말해보자고. 미국과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지. 그동안 내가 말한 것들이 모순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언론들이 비판하는데 사실 그런 점이 있지. 대외정책에서 내가 한 얘기들을 보자고.

“나토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나토 회원국이 침공받아도 미국이 자동적으로 방어해주지 않는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국가들이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 병력을 대지 않으면, 그들로부터 석유 구매를 중단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이 미군 주둔 비용 기여를 증대하지 않으면 기꺼이 미군 철수를 할 수 있다. 좋지는 않지만, 그 대답은 예스다.” “만약 미국이 현재의 나약한 길을 계속 간다면, 일본과 한국이 나와 상의하거나 혹은 상의 없이 핵무기 개발의 길로 가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엄청난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건 무역의 힘이다. 나는 무역을 절대적으로 거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다.”

뭐 좀 감이 잡혀? 뭐 대충 이런 거야. 미국이 국제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해온 수많은 국제 문제 개입이 미국에는 불공정한 비용을 치르는 희생이라는 거야. 그래서 미국 주도 국제질서 유지와 개입에서 그 ‘수혜자’들인 동맹국들이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거지. 미국과의 동맹에서 상대국들이 돈을 더 내고,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도 미국에 더 유리하게 재협상하자고.

내가 더 평화로운 세계 만들 수도

근데 말도 안 되는 얘기도 있지? 미국이 중동 석유를 안 살 수 있겠어? 빌어먹을 언론이나 전문가라는 놈들은 내 공약이 모순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그거 그렇게 단순히 말할 게 아니야. 일종의 외교 협상 전략이라고. 미국은 민주주의와 개방이라는 전통 가치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행동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내가 비즈니스맨 아니겠어? 협상하려면 상대방에게 내 카드를 보여주지 말아야지. 내 생각이 뭔지를 놈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지. 미국은 예측불가능한 국가가 되어야 해.

요즘 미국 대외정책의 최대 현안인 남중국해에서 중국놈들과의 대결을 어떻게 할 거냐고 많이 묻더군.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예측불가능해야 한다고 내가 수차례나 말했지. 나의 정책 부재와 무식함을 가리는 꼼수고 궤변이라고?

큰 방향이 없는 게 아니야. 앞으로 나토에서 유럽 동맹국들에는 역할과 비용을 더 치르라고 할 거고, 나토를 방위동맹이 아니라 테러에 초점을 맞추는 기구로 바꿀 수도 있어. 이러면 나토 동맹이 약화될 수 있겠지. 내가 블라디미르 푸틴을 높게 평가하잖아. 그런 것도 있지만, 앞으로 러시아와 잘 얘기해야 국제 문제 풀기가 쉬워. 당장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 도움이 있으면 내전 종결하기 쉽잖아. 러시아와는 관계 개선 해야지. 중국은 무역을 수단으로 압박해야지. 중국 제품 관세 45%로 올리고, 그렇게 압박해서 남중국해 진출에서 양보을 얻어내야 해. 중동에서는 석유 팔아서 돈 번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돈과 병력을 내서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나서야 해. 중동 분쟁에서 미국은 발을 빼야 해.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미군 주둔 비용 더 부담하고, 그들이 안 하겠다면 미군 뺄 거야. 한국, 일본이 핵무기 갖는다면, 뭐 가지라고 해.

나의 대외정책 모두를 미국 기성 엘리트와 군부는 반대하지.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라고. 내가 조지 부시같이 군사력만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기존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처럼 상대방을 압박하다가 안 되면 군사력으로 위협하거나 투입하는 뻔한 대처는 안 할 거야.

잘 생각해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고, 덜 개입한다는 나의 구상이 세계를 좀더 평화롭게 할 수 있어. 슬라보이 지제크라는 슬로베니아의 진보적 철학자가 나를 지지한 이유야. 2차대전 이후 70년 동안 지속된 미국 주도 국제질서를 내가 깰 수 있다고 본 거지. 당신 나라에서도 힐러리보다는 내가 차라리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진보층에서 있다며?

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얘기했어. 중국에 압력을 가해 북핵 문제를 해결시키겠다고 했어. 기본적으로 나는 중국과 군사대결을 원치 않아. 경제적 수단으로 그들을 압박할 거야. 내가 중국에 경제적 수단으로 압박하며 북핵 문제 해결하라 하고, 김정은과 직접 대화한다면, 북핵 문제 좀더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

그렇게 되겠냐고? 나도 알 수 없지. 이 대목에서 내가 충고 하나 하지. 당신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어. 내가 한국에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거 있지? 방위비 분담 늘리라고.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우리 바짓가랑이 붙잡고 주한미군 강화하고 북한을 압박해달라면서,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거 들어줬잖아. 계속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해주는 거지. 내 생각에 지금 박근혜 정부처럼 하면 내가 김정은이랑 햄버거 먹으면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 이유가 없을 거야.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와 미국 엘리트 세력 및 군부 등의 관계, 그리고 동맹국이나 적성국이 어떻게 나올 거냐에 달린 거지. 나는 나한테 표가 되고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일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큰 기대를 걸지 마. 내가 예측불가성을 말했잖아. 너희가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평화롭게 풀고 싶다면, 나와 엄청난 외교대결을 벌여야 할 거야. 나는 오바마나 힐러리처럼 옵션이 고정된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잘 준비해.

내가 억만장자라는 거 알지?

그런데 요즘 당신 나라 시끄럽다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엉뚱한 사람한테 조종당해 인기가 바닥이고, 물러나라고 난리가 아니더군. 사실상 국정운영을 못하는 상태로 보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두가지 유형이야. 먼저 러시아의 푸틴처럼 나라 꽉 잡고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랑 협상하기 편해. 서로 양보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지. 아니면 정반대의 사람. 안팎에서 새는 바가지 유형이지. 그런 사람을 상대해 손목 비틀기는 식은 죽 먹기야. 이거 내가 쓴 <협상의 기술>이라는 책에 대충 있는 거야.

지금 안팎에서 새고 있는 바가지가 된 당신 나라 대통령과 빨리 만나고 싶어. 나랑 박근혜 대통령이랑 만나는 장면 생각해봐. 나도 재미있을 거 같아. 나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국제적 위기 상황이어서 국정공백은 안 된다는 말이 당신 나라에 있다며? 잘 생각해라. 나와 박근혜가 만나서 개그를 벌이는 것을 보고 싶은지, 아니면 진지한 협상을 하는 것을 보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나보고 아웃사이더라고 하는데 정말 웃기는 얘기야. 내가 워싱턴의 잘난 체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비웃음을 사지만, 사실 내가 그들의 주인이었어. 내가 억만장자라는 거 몰라? 내가 어떻게 미국에서 아웃사이더이며, 중하류층의 경제적 이해와 일치하겠어?

아무튼 나를 너무 욕하거나, 지나친 기대를 갖지 마. 내가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힘과 돈에 달려 있어. 힘있는 쪽, 돈있는 쪽, 표있는 쪽으로 가는 거야. 내가 선거운동할 때 월가를 그렇게 공격했지만, 오바마가 만든 월가 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 폐기를 첫 과제로 설정한 거 봐.

4년 뒤의 미국과 세계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몰라. 당분간 미국은 시끄러워질 거고, 세계도 바뀔 거야. 그건 미국인들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치르는 세계 모든 사람들의 대가일 거야. 안녕. 앞으로는 삽질 보도 하지 말고,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도 너무 믿지 마.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대선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트럼프 타워 사무실에서 멕시코 음식인 타코를 먹는 모습. 트럼프는 자신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며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으나, 선거 기간 내내 외국계 이민자들에 대해 거침없는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AP 연합뉴스
대선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트럼프 타워 사무실에서 멕시코 음식인 타코를 먹는 모습. 트럼프는 자신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며 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으나, 선거 기간 내내 외국계 이민자들에 대해 거침없는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AP 연합뉴스
제주 북쪽 해상을 항해 중인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갑판에서 그라울러 조기경보기가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주 북쪽 해상을 항해 중인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갑판에서 그라울러 조기경보기가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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