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워싱턴에 자리한 의사당 앞에서 트럼프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손팻말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대해 잇따라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3일 워싱턴주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임시 중지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 효력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미국 입국이 금지됐던 이슬람권 7개국 국민과 난민들의 미국 입국 금지도 시행 일주일 만에 즉시 해제됐다. 다음날인 4일 트럼프 정부는 연방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즉각 항고했다. 그러나 제9연방항소법원은 5일 오전 법무부의 긴급요청을 기각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당분간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 금지가 유지되는 셈이다.
사흘 새 숨가쁘게 진행된 이번 사태는 미국 안팎에서 거센 비판과 혼란을 촉발한 ‘반이민 행정명령’을 두고 연방정부와 연방법원이 상반된 시각을 보이며 대립하는 모양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법정공방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법정공방 과정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자질 시비와 무리한 밀어붙이기식 정책 결정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4일 미 법무부는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의 반이민 행정명령 집행중지 결정에 대해 연방항소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미합중국 이름으로 작성된 항고장은 반이민 행정명령이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고 주장했으나, 항소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연방지방법원이 결정하고 항소법원이 유지한 이번 결정이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 자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아니다. ‘행정명령 임시중지 명령’에 대한 결정일 뿐이다.
행정명령 자체를 놓고 다투는 ‘행정명령 중지 가처분 신청’은 별도로 진행되며, 시애틀 연방지법은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결국 이 사안은 진행 결과에 따라 대법원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적십자사 연례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법정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으나, 다음날 항소법원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앞서 그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판사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우리나라를 열어줬다”, “소위 판사라 불리는 자의 의견은 가소로우며, 뒤집힐 것”이라고 하는 등 7개의 ‘폭풍 트위트’를 날리며 이번 결정을 내린 제임스 로바트 시애틀 연방지방법원 판사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트럼프의 거친 반격은 위기감을 반영한다. 야심작인 반이민 행정명령이 벽에 부딪히면 초기 국정 추진 동력 자체가 떨어진다. <시비에스>(CBS) 방송이 4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 지지도가 40%, 반대가 48%였다. 1953년 이래, 취임 직후에 이처럼 반대가 지지를 앞지른 경우는 처음이라고 방송은 보도했다. 또 여론조사에선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으나, 이번 조사에선 찬성 45%, 반대 51% 등으로 ‘반대’가 더 많았다.
미 국무부는 이미 연방지법 결정에 따라 유효한 미국 입국 비자를 소지한 사람들은 미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라크, 예멘 등 입국이 불허됐던 7개국 국적자들은 상황이 바뀌기 전에 일단 미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가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제 다시 상황이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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