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3일 백악관에서 압델 파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맞아들이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나는 엘시시 대통령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멋진 일을 해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압델 파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3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우리는 엘시시 대통령의 매우 강력한 지지자”라고 강조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2013년 쿠데타로 축출한 뒤 인권 탄압을 지속해 왔다. 유엔(UN)은 지난해 이집트 정부가 지속적으로 여성, 인권 운동가, 언론인을 박해하고 있다고 밝혔고, 인권단체들은 최소 4만명의 정치범이 구금돼 있다고 추산한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전파를 주요 명분으로 삼아 온 미국의 외교 전략이 이번 정상회담으로 흔들리게 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미국이 이집트 내 인권 탄압에 연연하지 않고 엘시시 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해준 셈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인권 탄압을 이유로 엘시시 정부를 아예 외면해 왔다.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관계를 천명한) 그 순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트럼프는) 이집트 내에서 이뤄지는 반대파에 대한 잔혹한 탄압에 대해 우려하는 것보다 이집트가 국제적 테러리즘에 함께 맞서는 동지가 되는 것이 미국에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에서 인권이라는 키워드의 배제는 꼬리를 물고 있다. 전날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에이비시>(ABC) 방송에 출연해 오바마 행정부의 이스라엘 정착촌 반대 정책을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이라고 언급하면서 정착촌을 묵인할 뜻을 내비쳤다. 이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점령’으로 보는 시각에 반할 뿐 아니라, 미국 스스로가 지지해 온 ‘2국가 해법’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여 파문이 예상된다. 서안지구 이스라엘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침범하는 ‘불법 건축물’로 규정돼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에는 미국 기업들이 바레인에 F-16 전투기 등 무기를 판매하도록 허용해 여론의 비난을 들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시아파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요구하며 바레인에 무기를 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희박한 인권 의식은 이미 지난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중국 천안문 사건을 ‘폭동’으로 지칭했을 때부터 밑바닥이 보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바레인에 대한 무기 수출 허용을 거론하며 “트럼프는 인권을 증진하는 미국 외교 정책의 중요한 목표를 저버렸다.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촉진하거나 미국의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실례가 거의 매일 제시된다”고 비판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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