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 주의 칸샤이쿤 지역에서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으로 민간인이 대거 살상된 데 대해 "인류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라며 "이러한 악랄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고립주의’ 노선을 밝혀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격적인 시리아 미사일 공격을 계기로 ‘개입주의’로 방향을 틀지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공격으로 국내 정책 실패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고 ‘러시아 스캔들’을 물타기하는 효과를 보고 있지만, 트럼프의 외교정책 노선 전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한 일회성 사건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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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3조 트럼프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석달도 안 된 시점에서 ‘레임덕’ 수준의 지지율인 35%를 기록했다. 지난달 ‘오바마 케어’를 대체하는 새 건강보험법 ‘트럼프 케어’의 의회 통과가 좌절되면서 감세, 인프라 투자 등 주요 정책들은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공격은 미국인들의 눈을 국내에서 국외로 돌리게 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시엔엔>(CNN) 방송은 지난 7일 시리아 공습을 보도하면서 “트럼프가 미국의 (진정한) 대통령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지원하고 있는 바샤르 아사드 정부군을 공격함으로써, 트럼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도 일시 무마할 수 있게 됐다. 또 시리아를 공격해 핵·미사일 시험을 계속하는 북한과 이를 방관하는 중국에 경고 신호를 보낸 측면도 있다. 백악관은 “단순히 시리아뿐 아니라 전세계에 매우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추가 공격 가능성을 열어놓고는 있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에게 보낸 공식서한에서 “필요하고 적절하다면 추가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미국의 행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시리아 공격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았고, 시리아가 미국이나 그 동맹국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국 방어로 보기도 어려워 국제법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봤다. 신문은 미국 국내법으로도 “대다수의 법학자들은 미국이 공격을 받고 있을 때가 아니면 의회가 군사작전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미국의 시리아 공습이 국제법·국내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 일환으로 시리아에 투입된 1천명가량의 미군이 시리아 정권이나 러시아로부터 보복 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는 상호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가동 중이었던 시리아 내 미군과의 통신채널을 8일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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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주의로 전환 신호? 고립주의를 추구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전격적으로 시리아 공격에 나선 것이 뜻밖의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이 트럼프 대외정책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벤 카딘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이번 조처가 시리아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학무기 공격을 응징하기 위한 일회성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8일 익명의 정부 당국자가 “정부는 이번 조처가 (아사드 대통령의) 행동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희망하며, 더 이상의 화학 공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공격 이후에도 시리아 정책에 대한 큰 그림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화학무기 피해 어린이 사진을 접하고 감정적으로 공격을 단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물론 백악관은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는 시리아 공습 3일 전에는 쿠데타로 집권하고 인권을 탄압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인도주의’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외교정책 전환 가능성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애초 트럼프에게 분명한 정책노선이 있었느냐’며 냉소적 태도를 보였다. 전 국방부 관리를 지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캐슬린 힉스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에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새로운 ‘~주의’는 없다. 다만, 예측 불가능하고 훈련되지 않았으며 본능적인, 트럼프 자신의 특성만이 돌출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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