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게이트’ 파문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전직 정보기관 수장이나 미국 언론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상원 청문회 증언을 하루 앞둔 7일 “(러시아 게이트에 비하면) 워터게이트가 무색해진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사임을 부른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급하며 “그때 난 젊은 공군 장교였는데, 아주 무시무시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두 사건을 비교한다면 워터게이트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건 앞에서는 정말 무색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코미 전 국장의 해임을 언급하면서 “우리 제도에 대해 외부에서는 러시아가, 내부에서는 대통령 자신이 공격을 가하는 것에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클래퍼 전 국장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정보 업무를 맡은 인물로, 2010년부터 17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을 이끌다 지난 1월 정권 교체로 물러났다. 그가 국장일 때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 쪽이 해킹을 통해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 한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를 벌여왔다. 그는 지난달 상원에 나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차관보 출신으로 워터게이트 사건 조사에도 참여한 바 있는 필립 앨런 라코로바는 8일치 <워싱턴 포스트> 기고에서 코미 전 국장의 서면 증언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코미의 진술은 사법방해 행위의 증거로 쓰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는 “진행중인 범죄 수사에 대통령이 이렇게 개입한 사례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쌓이는 증거와 정황에 미국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통성’을 더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코미 전 국장의 서면 증언을 다룬 칼럼의 제목을 ‘제임스 코미와 우리의 열등한 폭군(despot) 도널드 트럼프’라고 달았다. 이 칼럼은 “코미의 증언을 보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의문은 대통령이 사법방해라는 특정한 위법행위를 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법치주의를 체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지”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전날 칼럼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도자로서 훨씬 나은 언행을 보여줬다면서 그가 대통령직을 물려받는 게 낫다고 했다. 또 “공화당 의원들은 (사태의) 종결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며, 그들한테나 우리 모두한테나 펜스 부통령이 최선의 희망일 수 있다”고 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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