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웜비어의 치료를 맡은 신시내티주립대 병원의 대니얼 캔터(가운데) 등이 15일 기자회견에서 웜비어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신시내티/AP 연합뉴스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13일(현지시각) 혼수상태로 귀국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혼수상태 귀환’으로 미국의 대북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웜비어가 입원한 신시내티주립대 병원의 신경과 전문의 대니얼 캔터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웜비어의 신경 상태는 ‘깨어있지만 반응하지 않은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웜비어는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깜박인다. 그러나 말도, 자신이 의도하는 동작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버지니아주립대 3학년이던 웜비어는 지난해 1월 관광차 방문한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캔터는 또 지난해 4월에 북한에서 찍은 웜비어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전달받았다며, 웜비어가 뇌 손상을 입고 몇주가 지난 뒤 이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웜비어가 1년 이상 혼수상태에 있었다는 뜻이다.
의료진은 “웜비어가 (북한이 설명한) 보툴리누스 중독증에 걸렸다는 아무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체적 학대나 골절상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두개골과 목뼈도 정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웜비어가 “모든 부위에 걸친 광범위한 뇌 조직 상실을 겪었다”면서, 이는 젊은 사람에게는 심정지로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지만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호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웜비어의 아버지인 프레드 웜비어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아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야만스러운 대우를 받은 것에 분노를 느낀다”며 “북한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프레드는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밤 10시께 전화를 걸어 가족들을 위로했다고 말했다. 프레드는 “정말 훌륭한 통화였다”며 “그(트럼프 대통령)는 오토를 찾아내려고 했다. 자애롭고 친절한 일”이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편집장인 조엘 위트(전 미 국무부 북한 분석관)는 이날 워싱턴에서 <한겨레> 등에 “웜비어 사태로 상황이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다”며 “북한이 (현재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추가로 석방하더라도 대화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비해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과의 협상을 시도하는 쪽으로 갈 것 같다며 “전·현직 당국자들은 미국인 한 명에 대한 북한의 혹사를 이유로 그런 전략을 바꿀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협상 쪽으로 이동하는 이유에 대해, 중국이 의미 있는 대북 압박을 보여주지 못해 ‘중국 역할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행정부 내부에서 나오고 있고, 북한과의 대결보다는 협상에 더 관심이 많은 문재인 정부가 한국에 등장한 것 등을 꼽았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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