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기념일(7월4일)은 최고의 국경일이지만 시카고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까 걱정해야 하는 악몽의 시간이다.
<시카고 트리뷴>은 독립기념일 연휴 나흘간 인구 270만의 이 도시에서 56건의 총격으로 15명이 사망하고 86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5일 보도했다. 이번처럼 독립기념일 연휴가 나흘 이어진 2013년(사망 12명, 부상 62명)과 견줘도 올해 독립기념일 총격 규모는 심각한 수준이다.
총성은 평소에도 총격이 잦은 시카고 남부와 서부에서 많이 울렸다. 토·일요일(1·2일)에는 비교적 평온했으나 연휴 막바지인 화요일(4일) 오후 3시30분과 수요일(5일) 오전 3시30분 사이에는 12시간 만에 4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총격 감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경찰관 1300명을 추가 배치한 시카고 경찰은 100명이 넘는 사상자 숫자에 “난처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찰은 고의적 살인 사건은 소수이며 “사소한 다툼이 총을 뽑게 만든”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공원에서 자리를 다투다, 자동차 운전자와 자전거를 탄 사람이 티격태격하다 총을 쏜 경우도 있다. 축제 분위기에 과음한 시민들이 총격범으로 둔갑한 경우도 많았다.
알카포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던 시카고는 갱단 등 범죄 문제가 심각한 곳이다. 지난해 살인 피해자는 762명으로 2015년(480명)보다 58.8%나 늘면서 19년 만에 가장 많았다. 총격 사건 피해자는 4331명에 달했다. 시카고의 살인 피해자 숫자는 인구가 훨씬 많은 뉴욕(약 850만명)과 로스앤젤레스(약 380만명)의 피해자 숫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한국의 연간 살인 피해자 수가 900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시카고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시카고는 연간 범죄 사망자 수가 이라크전 미군 전사자보다 많다고 해서 ‘시라크’(시카고+이라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뉴스위크>는 근본 원인은 느슨한 총기 규제에 있지만, 예산 감축으로 범죄 상담사들이 줄어든 게 문제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관들의 총기 남용에 대한 반발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경찰관 상대 총격은 2015년의 두 배로 뛰었다.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당신이 살인 피해자가 된다고 해서 스스로 책망할 필요는 없다. (시카고에서는) 그저 그런 환경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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