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트럼프호텔 누리집 갈무리
지난 6월 어느 날 아침,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 부부는 백악관에서 900m 떨어진 미국 워싱턴의 한 호화 호텔 라운지에서 빵을 뜯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같은 시각, 아래층 그랜드볼룸에선 금융업계 관계자 수백명이 모여 금융업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참석했다.
워싱턴 펜실베이니아거리 1100번지. 1899년 지어진 뒤 최근까지 ‘올드 포스트 오피스 파빌리언’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개보수 공사를 거쳐 지난해 9월부터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로 이름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회사가 임대해 영업을 개시한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를 상징하는 지역 랜드마크가 됐다. 공화당 유력 인사들이 모여 식사하고, 대통령과 고위 관료가 만찬을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벌어진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7일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은 이 호텔을 ‘백악관 별관’이라 표현하면서 최고의 로비 공간으로 떠오른 풍경을 전했다. 취재진은 지난 5월 내내 이 호텔로 출근했다고 한다.
263개의 방이 있는 이 5성급 호텔에는 1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랜드볼룸과 유명 레스토랑, 각종 모임 장소가 곳곳에 배치돼있다. 최대 200명이 입장할 수 있는 ‘링컨 라이브러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모임 장소로 유명하다. ‘벤자민 바’에서 고위 관료와 함께 보드카 한 잔 마시기 위해선 수백달러가 족히 든다.
취재진이 한달간 직접 목격한 유명 인사만 수백명이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방송인 오마로자 매니골트, 숀 스파이서 전 백악관 대변인이 목격됐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다른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로비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놓고 재선 기금모금 행사를 열기도 했다. 6월28일 밤 열린 행사의 1인당 최소 참가비는 3만5000달러(약 4000만원)였다. 300여명이 참석해 1000만달러가 모였다.
외국 정상들도 백악관으로 향하기 전 이곳에 묵었다. 5월엔 터키 정부기관이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위한 연례 행사를 열었다. 참석자 190명이 3만달러 이상 지불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 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테러 지원국에 소송을 걸 수 있는 이른바 ‘9·11 소송법’을 철회시키기 위해 미 의회를 상대로 로비하는 과정에서 이 호텔에서만 27만달러를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임기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방문한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워싱턴디시의 로비. 트럼프호텔 누리집 갈무리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정상이 이 호텔에 묵으면서 이익이 발생하면 재무부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현행법상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이 외국 정부로부터 사익을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득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호텔은 지난해 가을부터 지난 4월 중순까지 최소 1970만달러를 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텔 운영을 아들에게 맡기고 어떤 이익도 챙기지 않겠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배당금을 받을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 호텔이 정부 소유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면서 임대료와 배당금을 내기로 돼 있는 것 또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밝혔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