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다루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한테 “바보”(idiot)라는 모욕까지 가하며 사임을 요구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4일 보도했다. 세션스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었다는 보도는 이미 나왔지만 당시의 구체적 상황이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게이트 대응에 대한 불만으로 해임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후임 문제를 논의한 5월17일 백악관 오벌룸 회의 장면을 행정부 관리 등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세션스 장관이 참석했고, 도널드 매건 법률고문 등 백악관 보좌진도 동석했다.
회의 도중 매건 법률고문이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관장하는 로젠스타인 부장관은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 국장을 특별검사로 지명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고, 매건 법률고문은 이를 참석자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세션스 장관의 면전에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으며, 당신을 장관으로 앉힌 게 일생일대의 최대 실수 중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한 “바보”라고 욕한 뒤 사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황망해진 세션스 장관은 사의를 밝히고 곧장 백악관 오벌룸을 떠났다. 그날 저녁, 세션스 장관은 사의를 밝히는 짧은 서신을 트럼프 대통령한테 보냈다.
하지만 이날 참모들과 논의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세션스 장관에게 답신을 보냈다. 펜스 부통령, 스티븐 배넌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 레인스 프리버스 당시 비서실장이 한결같이 세션스 장관을 해임하는 것은 혼란을 더 부채질한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상원의원을 한 세션스 장관을 자르면 공화당 내 여론까지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세션스 장관은 경선 과정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 중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선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게이트의 동향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트위터를 통해 세션스 장관이 “약하다”고 지적하는 등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행태를 보였다.
세션스 장관은 당시 일에 대해 수십년의 공직생활 중 가장 모욕적인 경험이었다고 주변에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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