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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말전쟁·무력시위, 북 협상복귀 어렵게하고 오판 위험”

등록 2017-10-09 15:57수정 2017-10-09 21:51

‘대북 협상파’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인터뷰

“트럼프 행정부 지리멸렬, 동맹에 더 큰 혼란 초래할 것”
“북-미 충돌 피하길 원해…말전쟁 자체가 충돌 야기 안 해”
“북핵 외교적 노력, 실질적으로 시작해 본 적조차 없어”
“군사훈련 축소 좋은 생각이지만 상호적이고 투명해야”

“북핵 문제 해결, 만루홈런이 아니라 ‘스몰볼’ 경기해야…
완전한 비핵화, 빨리 도달 어렵다는 점 수용하고 인내해야”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말 전쟁’, 북-미 간 군사적 긴장 고조, 트럼프 행정부의 내분과 혼란 등이 겹치면서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서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대북 협상파로 꼽히는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련의 말 전쟁과 미국의 무력시위 등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돌아오기 더욱 어렵게” 하고 “오판의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맨스필드재단 사무실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했으며, 7일 전자우편을 통해 추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 분란은 계산된 것 아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불렀다는 보도가 지난 4일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잇단 엇박자를 조율된 역할 분담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행정부 내부의 혼란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하나.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분란은 미국의 지렛대를 키우기 위해 계산된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식의 역할 분담이 결코 아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행정부의 기능 상실과 혼란, 분열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그들은 응집력과 충성심 와해에 시달리고 있다. 늦어도 내년 초봄쯤, 미 연방수사국(FBI)이나 특검이 트럼프 행정부 전·현직 관료들을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러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런 지리멸렬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겐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를 자신들의 야망을 위한 선물로 여기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좋아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을 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 북한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말 전쟁’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 같은 말들은 지지층한테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미국인들한테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들의 80% 이상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외교적 접근을 원하고 있다.

‘말 전쟁’ 자체가 충돌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쪽 모두 충돌은 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레토릭(말치장) 과열의 문제점은 개인적으로 모욕을 당한 김정은 위원장이 물러서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체면을 세워주지 않으면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테이블로 돌아오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제해야 한다. 자제력을 보여주는 것은 더 강한 국가의 의무다. 미국에는 김 위원장한테 약간의 존중을 보여줄 정도의 여력이 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을 말리지 못하고 있다.

“맞는 얘기다. 참모들이 유엔총회 연설(의 강한 레토릭)을 자제시키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불 같은 언어들을 골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에는 참모들 말을 들을 것이다. 희망하건대,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주제들로 (관심을) 옮겨갈 것이고, 그게 아마 북한에 약간의 휴지기를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진정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몇주 뒤에 상황이 좀 더 안정되면 외교를 위한 기회도 생길 것이다.”

-외교를 위한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보는 근거가 있다면?

“내부 정보는 없다. 그러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최근(지난달 25일 ‘미국 전쟁연구소’ 주관 행사에서) 북한 핵무기나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거할 수 있는 정밀타격 군사옵션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맥매스터 보좌관은 미국이 대화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북한이 대화를 위한 기회를 잡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뜨거운 ‘말 전쟁’에도 미국의 전반적인 대북 정책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유지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관여의 기회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무력시위는 북한이 물러서기 어렵게 만들어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미국의 무력시위가 진행됐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중순 북방한계선을 넘어 B-1B 랜서와 F-15C를 보냈고, 또다른 일련의 무력 시위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미군의 전개는 3개의 서로 다른 청중에 대한 메시지다. 첫번째 청중은 한국으로, 미국은 한국의 신뢰할 만한 동맹이며 어떤 위협에도 한반도를 방어할 것이라는 결의를 한국민들에게 보여줘 안심시키는 것이다. 두번째 청중은 중국이다. 미국이 군사옵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옵션은 아니지만, 중국이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피하고 싶다면 모든 힘을 다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세번째 청중은 북한인데,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 움직임은 별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종류의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북한 입장에선 거의 반드시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따라서 무력시위는 ‘말 전쟁’과 거의 비슷하게 북한이 물러서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미국이 지난 4월 칼빈슨 항모를 보냈고, 또 레이건호를 보내 무력시위를 한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고, 위험해 보인다.

“미국은 항모 전단을 아주 빈번하게 공격적인 공습 기반으로 사용했다.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때도 그랬다. 따라서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에 극도의 우려를 심어준다. 미국이 공습을 가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무력을 배치했다고 북한이 생각하게 되면 오판의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은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지 않도록 한국과 협력해 주의를 기울여 한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하면서 ‘최대의 압박’이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할 때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힘의 요소를 옵션에 추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힘은 제재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군사행동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문제는 외교적 옵션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느냐, 아니면 강압적 옵션들(제재나 압박)만 남아있냐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외교적 옵션들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외교적 옵션이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외교적 옵션을 더 가까이 끌어오기 위해 미국과 한국은 장애물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장애물은 대화를 하려면 북한이 미리 구체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미국이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은 어떤 전제 조건도 없이 논의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미국은 대화에 앞서 북한한테 구체적인 양보들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우리한테 정말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요구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 행정부가 대북 제재로 충분한 압력을 넣으면 북한이 대화 재개나 제재 해제의 기대를 품고 구체적인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제재가 북한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한 북한 경제는 여전히 위축되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성장은 대체로 시장 개혁에 따른 국내 생산과 소비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데이터가 많지 않아 ‘강력한 엔진’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국내 경제 성장 엔진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는 3~5%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제재가 강력하게 효력을 발휘해도 4%성장을 1% 성장 정도로 줄일 수 있을 뿐일 것이다. 따라서 제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대화와 관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자신들의 행동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진지하게 선제타격이나 예방전쟁과 같은 대북 군사행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는가?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미국은 항상 이용 가능한 군사옵션 메뉴는 갖고 있다. 작게는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큰 옵션으로는 북한 지도부나 군 작전 및 통제소 파괴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 어떤 것도 좋은 옵션이 아니다. (북한의) 보복의 위험, 긴장 고조의 위험, 중국을 고립시킬 위험, 국제적 지지를 잃을 위험 등의 대가가 따른다.

나에게는 군사옵션들 가운데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모든 대안을 소진했다면 전쟁으로 가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외교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험을 실질적으로 시작해본 적조차 없다.

물론, 외교가 우리에게 곧바로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나 좋은 방법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건 군사옵션도 마찬가지다. 군사옵션이 좋은 해결책이 아닌데도 한손엔 외교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최소한으로 잡아놓고 다른 손엔 완전한 비핵화를 들고 서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사석에서 대북 관여를 통해 싸움의 장을 바꿀 수 있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관여를 통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한의 핵분열 물질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는가? 실험을 중단시킬 수 있는가? 확산 위험을 줄일 수 있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관여를 통해) 싸움의 장을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북한이 선택한 싸움의 장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하고 거기에 대응해 미국의 폭격기가 뜨고, 또한 선전전과 그에 대응을 하는 식의 싸움의 장이다. 이건 북한에 유리한 싸움의 장이다.

나라면 차라리 다른 싸움의 장에서 북한과 싸울 것이다. 경제의 힘, 정보의 힘, 문화의 힘, 사이버의 힘, 아이디어의 힘, 심지어 사랑이나 친절함의 힘, 인도주의적인 힘을 놓고 북한과 경쟁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분야에서 많은 힘과 지적 역량, 많은 소프트 파워와 스마트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북한이 선택한 싸움의 장에서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완전한 비핵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북한은 핵보유 국가에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 이런 현실과 비핵화 목표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좁힐 수 있다고 보는가?

“비핵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핵능력을 동결하고 이런 상황과 공존하는 것은 나쁜 생각이다. 첫번째 단계는 핵분열 물질 생산, 미사일 실험 등의 중단이겠지만, 곧이어 미국과 한국은 중국 등과 협조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는 단계별 과정을 시작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내할 줄 알아야 하고, 완전한 비핵화가 빠른 시일 안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무기용 핵분열 물질을 위해 고농축우라늄을 만들고 있다면, 그런 생산을 멈추게 하고, 세이프가드(안전조치) 아래서 원자력발전을 위한 수출용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도록 허용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북한이 핵비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한 점을 고려할 때 법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변호사들이 영리하게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 목표를 장기 전략으로 설정하면 북한과 단계별 협상을 타결해도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5년이나 4년마다 바뀌는 것에 따른 합의 유지 여부가 문제로 남을 것이다.

“특정 행정부를 넘어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이 항상 문제가 된다. 우리는 이란 핵합의와 관련해 그런 모습을 보고 있다. 모두가 동의하듯이 이란이 합의를 준수하고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을 폐기하면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다. 그런 행위가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가 무엇이겠는가? 어떤 합의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합의를 폐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협상 반대론자들은 북한이 협정을 깨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북한은 합의문 그 자체는 꽤 잘 지킨다. 제네바합의의 경우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지점에서 북한이 우라늄농축 실험을 시작한 것은 아주 분명한다. 그러나 제네바합의 그 자체에는 우라늄농축을 특정해 금지하는 조항이 없고, 플루토늄이나 경수로에 대한 내용이다. 다만, 제네바합의에서 언급된 한반도비핵화선언에는 고농축우라늄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북한을 변명해주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아주 엉큼하고 영리해 합의문의 약점을 찾는다. 제네바합의에는 우라늄농축이 분명하게 나와있지 않았고, 미국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북한이 생각했기 때문에 속임수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이 속임수를 써도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북한이 속임수를 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협상을 통해 중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협상을 하는 대신에 ‘당신들이 속이고 있어, 당신들과 얘기하는 것에 지쳤어’라고 선언해버렸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네 죄를 인정할 준비가 돼 있으면 우리한테 오라’고 했다. 그러한 접근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가 북한을 신뢰한다면 협상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협상이 필요한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지나 동결에 대한 대가로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중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 제안이 미국과 한국의 국내 반대로 이뤄질 수 없다면, 어떤 다른 대가를 북한에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한·미와 북한이 군사훈련을 상대방에 덜 위협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다. 양쪽 모두 훈련 장소를 비무장지대(DMZ)에서 떨어진 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 또한 훈련에 동원되는 무력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 발사, 한·미 쪽에선 B-52이나 B-2, 혹은 B-1B 랜서와 같은 정밀 폭격기 등의 전략무기 시스템 등(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훈련 축소는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이처럼 상호적이어야 한다. 또한 훈련이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옵서버로 한-미 연합훈련을 참관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지금처럼 대규모 훈련을 하지 않아도 한·미가 전투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한-미와 북한)이든 군사훈련을 아예 포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양쪽 모두 강한 억지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또한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핵위협과 한·미의 재래식 군사훈련을 맞교환하는 것은 나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쁜 거래라고 생각한다.

대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다면, 그 목적으로 부과한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서로 조응하는 거래다.”

만루홈런 아닌 희생번트로 신뢰 쌓아야

-당신은 최근 북핵 로드맵 보고서에서 북-미 간 푸에블로호 반환 협상, 한국전 미군 유해 발굴 재개, 남·북·미·중 국제우주정거장 공동 우주인 파견 등 36개가 넘는 점진적이고도 작은 조처들을 제안했다. 이러한 조처들이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멈출 수 있다고 보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신뢰가 ‘0’인 상태에서 출발하면 상대를 무너뜨릴 준비만 하게 된다. 또한 곧바로 최대 목표로 가려고 하면 거기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여자친구와 처음 만나 식사 한 번도 하지 않고 청혼할 수 없는 것 아니냐. 그건 먹혀들지 않는다.

작은 조처들을 통해 핵문제에 대해 진전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선 만루홈런이 아니라 희생번트도 대서 한번에 1점씩을 올리는 ‘스몰볼’ 경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첫 단계부터 신뢰관계 구축이나 북한도 신뢰하는 과정 없이 북한에 ‘최우량 자산’인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 정책을 계속 따라왔다. 이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더 나은 전략이 있다고 보는가?

“미국과 한국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언제든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나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협의나 조정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때마다 항상 효과가 떨어졌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지금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의 압박에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본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을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그보다는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이 함께 협력하면서도 다른 역할을 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보 보증자로 역할을 할 수 있고, 북한과 협상이 타결되면 북한에 대해서도 잠재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자신의 역할을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접촉을 통해 북한을 개방하고, 한국의 참여를 통해 북한 경제를 개방하고, 가족 및 여행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개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과 정치적 관계를 위해서도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가 반드시 조율해야 한다. 조율만 된다면 한국과 미국의 행동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통일된 전략의 각각의 부분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채널을 복원하거나 대북 인도지원을 하는 한국의 시도조차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에 그런 역할을 인정할지 의문이다.

“그것이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오래된 문제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 행정부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이 관여를 시도한다고 생각할 때는 때때로 예민해졌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좀 더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은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북한과 관여하기 위해 취하는 조처들을 환영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 있다. 아마도 지금은 새로운 제재를 집행해야 할 것이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햇볕 정책’은 부분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비교우위에 입각한 한국의 자부심에 기초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6차 핵실험, 특히 성공적인 수소폭탄 실험으로 한국인들은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술핵무기나 자체 핵무장 없이도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사실 북한의 핵무기는 단지 군사안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핵무기는 정치적 안정 혹은 정치적 자존심, 남북 간 자부심의 경쟁 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북한이 왜 경수로를 갖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는가?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한국은 미사일 프로그램을 원하느냐? 북한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는데 어떻게 한국이 위성을 발사할 수 없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자존심의 영역은 정말로 실재하는 부분이다.

햇볕정책은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성취한 것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활력있는 경제, 부유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등등. 한국인은 이런 자부심을 북한에 보여주고 싶어했다. 나는 한국이 여전히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치욕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은 여전히 삶의 수준, 정치, 인권 등 모든 척도에서 훨씬 우수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그동안 일방적이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겨 남북 교류를 수용하기 더 쉬울 수도 있다.”

중국의 협력 끌어낼 수 있을지는 당대회 뒤 알 수 있을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북 제재 등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달 중순 공산당 당대회 이후에도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에 계속 협조할 것으로 보는가?

“한반도에 대한 커다란 전략적 질문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전쟁도 부분적으로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의 충돌이었다. 지금도 미-중 간에 전쟁 상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위한 경쟁은 존재한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수준의 ‘최대의 압박’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그런 압박이 전쟁에 이르게 하거나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특정 지점까지만 협력할 것이고, 그 지점을 넘어서면 ‘미안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도울 수 없다’고 얘기할 것이다.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당대회 이후에 좀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접근법에 좀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지고 글로벌 무대에 나올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석유 차단이 중국 쪽 협력의 마지막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겠다.

“맞다. 그러나 아직은 정말 모른다. 겨울이 오면 북한은 전력 생산을 위해 유류가 필요하다. 겨울에는 북한의 수력발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겨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봐야할 것이다.”

워싱턴/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미-중 관계 등 동아시아 현안 전반에 대한 손꼽히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예일대(학사)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석사)을 졸업한 그는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9년 동안 한반도와 중국-대만, 미얀마 등 분쟁 지역 분석을 담당했으며,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동아시아 담당 전문위원을 지냈다. 2008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한반도 팀장을 맡기도 했다. 2014년 4월부터 맨스필드재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 외교관은 그를 두고 “내가 만난 미국 전문가들 가운데 가장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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