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장관이 되고 싶다길래 ‘노 생큐’라고 했다.”
“백악관이 성인 돌봄센터가 된 게 부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같은 공화당 소속인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과 노골적 설전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이 자당 상원의원과 이렇게 막말을 주고받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요일인 8일 아침에 먼저 포문을 열었다. 트위터에 “밥 코커 상원의원이 테네시에서 다시 선거에 나서는 것을 승인해달라고 나한테 ‘구걸’했다. 또 국무장관이 되고 싶다길래 ‘노 생큐’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내년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코커 위원장은 곧 응수했다. 역시 트위터로 “백악관이 성인 돌봄센터가 된 게 부끄럽다. 누군가 오늘 아침 교대근무를 빼먹은 게 틀림없다”고 반격했다. 참모들이 돌출 행동을 막지 못했다고 비꼰 것이다.
충돌의 발단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비난했다는 최근 보도다. 코커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나라를 혼란으로부터 떼어놓는” 관료 셋 중 하나가 틸러슨 장관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둘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라고 했다. 북핵 등과 관련해 대통령이 사고를 치는 것을 이들이 제지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감시가 필요한 어린애쯤으로 묘사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장관이 지난달 30일 대북 접촉 채널 2~3개가 있다고 발언하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트위트로 망신을 줬다. 코커 위원장은 8월에는 샬러츠빌 난동 때 백인우월주의 반대 시위대도 문제였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견실함과 자격을 보여줄 능력이 아직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코커 위원장은 트위트를 올린 뒤 <뉴욕 타임스> 전화 인터뷰에서도 대통령을 골칫거리로 묘사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무를 “리얼리티 쇼”처럼 진행해 “날 걱정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어 “백악관에서는 매일매일 대통령을 뜯어말리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진행중인 외교 협상을 대통령의 트위터가 망친 경우가 여러 번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분별 없는 위협이 미국을 “3차대전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대북 ‘말 폭탄’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많은 이들이 ‘굿 캅, 배드 캅’ 같은 것을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채찍을 들면 국무장관이 당근을 내미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참모들의 노력을 대통령이 방해한다는 비판이다. 코커 위원장은 ‘출마 승인 구걸’ 주장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 번복 요구를 거부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시간 뒤 트위터에서 “밥 코커는 이란 핵협상을 우리한테 줬다”, “우리는 일을 해낼 사람이 필요하다”며 반격을 이어갔다. 코커 위원장이 부실한 이란 핵협상에 간여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코커 위원장은 골프도 함께 치는 대표적 ‘친 트럼프’ 인사였다.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하게 자수성가한 건설업자 출신인 그는 애초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입법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의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해왔다. 의원들은 소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불만을 주변에 털어놓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코커 위원장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면서 양쪽 관계가 더 경색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케어 폐지, 감세, 이란 핵협상 폐기 의제를 놓고 상원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싸움을 키워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