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 국제공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들타운/AP 연합뉴스
미국 <엔비시>(NBC) 방송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핵전력의 10배 증강을 요구해 수뇌부가 경악했다”고 보도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악의적 보도라고 비난하면서 방송허가 취소까지 위협해 논란이 되고 있다.
11일 <엔비시>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안보분야 고위급 회의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핵무기 보유량이 감축된 상황을 듣고는 보유량을 당시 수준인 3만2천기로 늘리길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는 4천기 수준인데 10배 가까이 늘리자는 제안이었다. <엔비시>는 현장에 있던 수석보좌관들이 이런 주장에 당황했고, 이런 얘기가 오간 후 ‘아이큐 대결 논란’으로 번진 틸러슨 장관의 ‘멍청이’(moron) 발언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보도를 부인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핵무기 증강을 요구했다는 보도는 완전히 틀렸다”며 무책임한 보도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완전히 소설이다. 내 위신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며 “방송허가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시점 아닌가? (<엔비시> 같은 언론은) 나라를 위해서도 나쁘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시간 후쯤 다시 트위트를 올려 “뉴스는 당파적이 돼가고 왜곡됐으며 거짓이다. 방송허가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 적절하지 않다면 취소해야 한다. 대중에게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을 만나서도 “핵 보유량을 늘릴 필요가 없다. 나는 현대화와 완전한 재건을 원한다. 최고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보도를 문제 삼고 나선 것에는 앞서 <엔비시>가 ‘멍청이’ 보도를 한 것에 대한 감정까지 겹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 록펠러 센터의 <엔비시> 방송 스튜디오 전경. 뉴욕/AP 연합뉴스
방송국 문을 닫게 만들겠다는 식의 태도에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수없이 매도해온 그이지만 방송국 인허가까지 거론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행히 미국에서 <엔비시> 등 전국적 네트워크 채널은 단일한 방송허가 대상이 아니며, 연방통신위원회(FCC)는 8년마다 개별 방송국의 허가를 갱신하게 돼 있다고 <시엔엔>(CNN)은 전했다. 200개 이상의 개별 방송국의 연합체 같은 <엔비시>에 대한 방송허가를 취소시킨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고, 개별 방송국의 허가를 하나하나 취소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 펄론 주니어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런 위협만으로도 언론에 겁을 줘 왜곡되고 불공정한 보도가 나오게 할 것”이라며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부당한 공격에 즉각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 대통령의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고든 스미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의 건국이념이 담긴 수정헌법에는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언론의 자유가 명시돼 있다”며 “언론 보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허가 취소를 들먹인 것은 정부 관리의 기본권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월터 쇼브 전 정부윤리청장도 “이는 민주주의가 중단되는 시점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