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백악관 회의에서 존 켈리 비서실장(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존 켈리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은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던 아들 로버트가 전사한 뒤 7년간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이듬해 <워싱턴 포스트>에 보낸 이메일에서도 “우리는 이 전쟁에서 자녀를 잃은 5500곳의 가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 아들의 죽음이 다른 이들의 죽음보다 비극적인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켈리의 7년간의 노력은 그의 상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허사가 됐다. 트럼프는 17일 언론 인터뷰에서 켈리의 아들이 전사했을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위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며 숨진 켈리의 아들을 단박에 정쟁의 중심으로 소환했다.
트럼프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2주 전 니제르에서 전사한 미군 4명에 대한 공식 언급이 왜 없느냐’는 지적에, 오바마의 경우 복무 중 숨진 군인 유족들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며 맞받았다. 그 뒤 오바마가 유족들에게 연락한 기록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켈리의 아들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이후 “오바마가 켈리에게는 전화하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이듬해 조찬에 켈리 부부를 초대해 미셸 오바마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했다” 등 관련 보도가 쏟아지며 켈리의 아들이 정치권에서 계속 언급되는 상황이다.
니제르에서 전사한 군인 유족에게 트럼프가 전화한 것은 맞지만 내용이 부적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시엔엔>(CNN) 방송은 민주당 의원 프레더리카 윌슨을 인용해, 트럼프가 17일 전사자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아내에게 전화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입대했겠지만, 그래도 가슴 아픈 일’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보도했다. 윌슨은 존슨의 아내와 함께 관을 맞으러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피커폰 통화의 일부를 들었다며 “남편을 잃고 우는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트위터에 “민주당 의원이 내가 전사한 군인의 부인에게 한 말을 완전히 날조했다(그리고 나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슬프다!”며 윌슨의 주장을 부인했다.
<시엔엔>은 자신의 비서실장의 상처까지 건드리며 피아를 가리지 않고 저격하는 트럼프가 인질범식 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파기되면 캐나다와 멕시코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겠지만 글로벌 공급망으로 얽혀 있는 미국 제조업과 농업도 혼란을 빚을 것이라며, “이들은 트럼프와 공화당의 초석이 되는 유권자들”이라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 불인증,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위협적 협상 전략을 구사하지만, 기대와 달리 각국이 미국과 일대일로 협상하기보다 미국을 빼고 이야기하려 해 동맹국들과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시엔엔>은 “트럼프 전략의 문제는 협상 상대에게 여지를 너무 적게 준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대내외적으로 강경파에 힘을 실어준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트럼프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공화당의 거물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16일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받는 자리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희생양을 찾으려 하는 어설프고 거짓된 국수주의”라고 발언했고, 트럼프는 17일 “나는 매우 좋은 사람이지만 어느 시점에선 반격한다. 그러면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맞받았다.
한편 아들이 정쟁의 희생양이 된 켈리는 17일 트럼프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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