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니제르에서 전사한 미군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아내가 17일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한 남편의 관을 붙들고 울고 있다. 마이애미/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발언으로 시작한 대통령의 군인 유족 예우 논란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군인 유족에 대한 무례한 발언이 쟁점화된 데 더해 다른 유족에게는 약속한 위로금을 주지 않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시엔엔>(CNN) 방송을 보면, 트럼프는 이달 초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무장조직의 매복에 걸려 전사한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아내에게 전화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입대했겠지만, 그래도 가슴 아픈 일’이라고 자신이 말했다는 언론 보도를 18일 전면 부인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이 말이 조작된 것이라며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통화가 녹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구나 통화 당시 존슨의 아내와 함께 차에 있던 그의 어머니도 보도된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맞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증언했다. 존슨의 어머니는 “대통령이 내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나와 내 남편에게 무례를 범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을 언론에 처음 전한 프레데리카 윌슨 민주당 의원은 “전화를 끊은 뒤 존슨의 아내는 ‘트럼프는 남편 이름조차 몰랐다. 계속 그를 당신의 남자(your guy)라고만 불렀다’고 했다. 그것이 존슨의 아내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보도했다. 존슨은 6살 딸과 2살 아들, 또 아내 배 속의 아이를 남겨두고 떠났다. 존슨의 아내가 공항에서 관에 엎드려 오열할 때 딸은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슬픈 장면까지 겹쳐지면서 트럼프의 부주의한 발언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이에 더해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전사자 유족에게 2만5천달러(약 2800만원)를 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딜런 볼드리지 병장의 아버지는 트럼프가 몇주 뒤에 전화해 “내 개인 계좌에서 2만5천달러 수표를 끊어주겠다. 다른 대통령들은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지만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볼드리지 병장의 아버지는 위로 편지를 받았을 뿐 수표를 받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이 수표를 보냈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 뒤였다고 전했다.
논란이 시작된 계기인 트럼프의 ‘오바마는 안 했지만, 나는 모든 전사자 유족에게 전화를 했다’는 발언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워싱턴 포스트>가 트럼프 취임 뒤 전사한 20명 중 13명의 가족에 물은 결과, 절반 정도만 대통령에게 전화가 왔다고 답했다. 8월에 이라크에서 전사한 병사의 아버지는 트럼프의 발언을 접하고 “더 화가 났다”며 “트럼프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딸에게 트위터를 가르쳐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때 트럼프가 2004년 이라크전에서 복무하던 미군 아들을 잃은 무슬림 부부를 비하한 일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 병사의 부모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아들 얘기를 하며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에 대한 공약을 비난하자, 트럼프는 아버지만 발언한 것을 꼬집으면서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발언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시엔엔>은 “트럼프의 방어적 대답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추잡한 정쟁으로 바꿔놨다”고 비판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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