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추풍낙엽이다.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상습 성폭력 폭로가 촉발한 ‘미 투(#metoo) 캠페인’에 고위직과 명사들의 지위와 명성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이 성추행 스캔들의 압박에 1일 사임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팰런은 2002년 만찬장에서 여성 언론인 줄리아 하틀리-브루어의 무릎에 반복적으로 손을 얹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는 “내가 대표하는 군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기준에 밑도는 행동”을 했다는 점을 사임 이유로 들었다. 하틀리-브루어는 정치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이 “주먹을 날리겠다”며 대응한 일화를 밝힌 적이 있는데, 최근 대중지 <선>이 무릎 위 손의 주인을 공개했다.
이 사건을 “약간 웃긴 일”이라고 치부한 하틀리-브루어는 “내 무릎이 (사임) 이유인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영국 언론들은 팰런을 둘러싼 성추문이 여럿이라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사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팰런은 더 폭로될 게 있냐는 <비비시>(BBC)의 질문에 “문화가 바뀌었다. 10, 15년 전에는 용납된 일이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만 답했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크 가니어 국제통상부 차관의 여비서는 그가 가게 밖에서 기다리며 여성용 자위기구를 사오게 했다고 폭로했다. 노동·연금장관을 지낸 스티븐 크랩은 자신의 사무실에 취직하려는 19살 여성에게 성적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데미안 그린 국무장관은 2015년에 술집에서 보수당 활동가의 무릎을 만지고 성적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폭로가 나와 역시 사임 압박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넷에는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지목되는 보수당 의원과 장관 명단이 돌고 있는데 숫자가 40명까지 불었다.
미국에서는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의 편집국장 마이클 오레스크스가 여성 2명을 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1일 사임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이던 1990년대 말에 이 신문에서 일하고 싶어 찾아온 여기자들과 상담한 뒤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에이비시>(ABC)와 <엠에스엔비시>(MSNBC)에서 활약한 유명 언론인 마크 핼퍼린이 여성 5명에게 성폭력을 휘둘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아마존 스튜디오 최고경영자 로이 프라이스는 부하 직원의 성폭력 제보로 지난달 사직했다. 성폭력 폭로와 파문이 정치권, 영화계, 언론계, 패션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양상이다.
파문의 진원지인 할리우드의 가해자 명단도 계속 길어진다. 팔순의 노배우 더스틴 호프만도 그물에 걸렸다. 작가 애나 그레이엄 헌터는 17살 때인 1985년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촬영 현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이 영화에 출연한 호프만한테 추행당했다고 폭로했다. 헌터는 잡지 기고에서 “호프만은 대놓고 추파를 던지고, 엉덩이를 만지고, 성관계에 대해 얘기했다”고 밝혔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을 연출한 영화감독 브렛 래트너에 대해서도 영화 <스피시즈>에 나온 배우 나타샤 헨스트리지 등 6명이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등의 주장을 내놨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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