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뉴욕 시민들이 전날 발생한 트럭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7년 전 ‘당첨’된 미국 영주권은 누구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2010년 무작위 추첨으로 영주권을 받아 미국에 입국한 22살의 우즈베키스탄 청년은 극단주의에 심취해 트럭으로 행인을 덮쳐 8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1일 외신들은 미국 뉴욕 로어맨해튼 자전거 도로에서 지난달 31일 트럭으로 행인들을 들이받아 8명을 숨지게 하고 11명을 다치게 한 세이풀로 사이포프(29)에게 테러 혐의가 적용됐다고 전했다. 테러 혐의가 적용되면 사형이 선고될 수 있다.
뉴욕 트럭 테러범 세이풀로 사이포프. 세인트찰스 카운티 교정본부 제공
<워싱턴 포스트>는 사이포프가 1년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고 2달 전 범행에 트럭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사이포프의 휴대전화에는 90개의 영상과 3800개의 사진이 저장돼 있었는데, 이 중 다수가 이슬람국가(IS)의 선전물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특히 “이라크에서 많은 이슬람국가 전사들이 살해된 데 대해 미국의 무슬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라는, 이슬람국가 지도자 아부 바크르 바그다디의 영상을 통한 선동에 경도됐다고 한다. 사이포프는 총상을 입고 입원 중인 병실에도 이슬람국가 깃발을 달기를 원했으며, 범행 도구로 쓰인 트럭에도 이슬람국가 깃발을 달고 싶었지만 주목을 끌 것 같아 그만두었다고 진술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핼러윈데이를 일부러 범행 날짜로 잡았다고 했다.
사이포프가 이슬람국가에 감화돼 범행을 저지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가 이슬람국가 쪽과 실제로 접촉한 뒤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불분명하다. 수사당국은 사이포프가 누군가의 조력을 받았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를 보면, 사이포프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호텔에서 일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호텔에서 일하고자 했지만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의탁하던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트럭 운전을 하며 2개의 관련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사업이 잘 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가장 최근 직업은 올 봄부터 시작한 우버 기사였다.
적어도 미국 입국 당시 사이포프가 극단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보수적 신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화려한 옷을 좋아했으며 코란에 대한 지식은 얕았다고 한다.
하지만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하며 사이포프는 점차 수염을 길게 기르고 이슬람 복식을 고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인들은 사이포프에게 “성격 문제가 있었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모욕해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사이포프는 2013년 우즈베키스탄 이민자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두었다. 아내는 그의 계획을 몰랐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는 중앙아시아에서 소련이 붕괴한 빈 자리에 이슬람 근본주의가 자리잡았다고 분석하며, 특히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서방으로 간 젊은이들이 원하는 만큼 성공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됐다고 느끼며 테러리즘에 경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일 사이포프가 비자 추첨제를 통해 입국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자 추첨제는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미국에 직장이나 가족이 없는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신청 수수료도 없고, 연간 최대 5만개의 비자가 추첨을 통해 발급된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 테러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지난달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때는 백악관과 공화당이 “비극을 정치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총기를 규제하는 법안을 거부했던 사실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포프를 “짐승”이라고 칭하며 “관타나모로 보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쿠바의 미국 해군기지에 있는 관타나모수용소는 합법성 여부와 인권 유린 논란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폐쇄를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사이포프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