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와의 합병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뉴욕에 위치한 타임워너 빌딩의 2015년 사진. 타임워너는 CNN 방송을 운영하는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을 산하에 두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의 공룡 통신업체 에이티앤티(AT&T)와 거대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 합병의 새 쟁점으로 <시엔엔>(CNN) 방송이 불쑥 떠올랐다. <시엔엔>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며 공개적으로 적대시하는 언론이다.
<뉴욕 타임스>는 에이티앤티 최고경영자 랜달 스테펜슨과 법무부 반독점국장 마칸 델라힘이 지난 6일 만나 합병 문제를 논의했다고 8일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추진 사실이 발표된 845억달러(약 94조원)짜리 대규모 합병은 시장 독점 등의 우려가 제기되며 아직 정부 승인을 얻지 못했다. 복수의 에이티앤티 관계자는 법무부가 승인 조건으로 <시엔엔> 방송 등을 거느린 타임워너 산하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 혹은 에이티앤티 산하 위성방송업체 디렉티브이의 매각을 내걸었다고 이 신문에 전했다.
이 합병은 통신사업자 에이티앤티가 에이치비오(HBO)와 워너브라더스 등 콘텐츠 업체를 보유한 타임워너를 인수해 독보적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로 자리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 때문에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려 2015년 인수한 위성방송 디렉티브이를 매각하는 것은 인수 목적과 배치된다. <뉴욕 타임스>는 에이티앤티와 타임워너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디렉티브이의 매각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도했다.
결국 법무부의 제안은 터너 브로드캐스팅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법무부와의 논의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를 인용해 “그것은 모두 <시엔엔>에 관한 것이었다”며 “당국자가 <시엔엔>을 팔면 (합병이) 통과될 것임을 확실히 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트위터에 올린 합성 영상 갈무리. 이 영상에서 트럼프는 시엔엔(CNN) 방송 로고가 얼굴에 합성된 남성을 때려눕힌다.
트럼프가 이 방송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탓에 법무부와 백악관 사이에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 사안을 법무부와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델라힘 국장도 “백악관에서 어떤 지시도 받은 바 없다”고 했다.
법무부 쪽에선 전혀 다른 얘기도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법무부 당국자들이 “<시엔엔> 매각은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에이티앤티의 스테펜슨이 제안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스테펜슨은 “팔겠다고 제안한 적도 없고 팔 생각도 없다”며 즉각 부인했다.
애초 연말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던 합병과 관련한 논란이 점화되며, 에이티앤티와 법무부가 법정 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떠올랐다. 이 합병은 민주당에서도 독점을 우려해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이번 논란으로 정치적으로 비화될 소지가 커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의 (<시엔엔>을 배척하는) 분명한 입장 때문에 판사가 법무부의 주장을 의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보도하지 않는다며 극우 성향의 <폭스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류 매체에 적대적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시엔엔> 로고를 머리에 쓴 이를 때려눕히는 패러디 장면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고, <엔비시>(NBC)는 방송 허가를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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