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제1 연방순회항소법원 청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적 사법부 물갈이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연방법원 법관 지명에 자신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은 드물지 않지만, 이번 물갈이는 폭과 내용 모두 사법부의 성격을 크게 뒤흔들 정도다.
<뉴욕 타임스>는 상원 법사위원회가 지난 9일 브렛 탤리 법무부 부차관보와 그레고리 캣사스 백악관 부법률고문의 연방항소법원 판사 인준안을 통과시키면서 사법부 개편 속도가 주목을 받는다고 11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뒤 종신직인 연방항소법원 판사 8명을 임명했는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후 50여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다.
지명자들 면면도 정치와 사회의 양극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탤리는 소셜미디어에서 힐러리 로댐(Rodham)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힐러리 썩은(Rotten) 클린턴”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정치색이 강하다. 2013년에는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난사로 20명이 희생된 지 한 달 만에 미국총기협회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글로 물의를 빚었다. 낙태를 노예제도와 비유한 존 부시, 특정 범죄자들에 대한 전기 충격 신체형을 주장한 스테파노스 비바스도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됐다.
극우적이고 경륜도 부족한 이들이 법원을 채우는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변호사협회는 올해 36살인 탤리 후보의 경우 한 번도 재판을 해보지 않아 자격이 없다며 심의위원 만장일치로 임명에 반대했다. 1989년 이래 이 협회가 만장일치로 반대 의견을 낸 대상은 세 명인데, 두 명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이들이다. 이 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법원 판사 4명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재임 1953~61년) 이래 미국 대통령들은 이 협회의 의견을 주요하게 참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어 이를 무시하고 있다.
‘극우 판사’ 앉히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량 물갈이 수단을 지녔기 때문이다. 상원은 100명 중 60명 이상이 참여해야 연방법원 판사 인준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도록 한 것을 2013년에 단순 과반 찬성으로 바꿨다. 이듬해 상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연방항소법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막았다. 그 후 생긴 공석까지 트럼프 대통령 몫으로 남았다. 또 연방항소법원 판사 150명 중 65살 이상이어서 급료는 같아도 업무 부담은 적은 비상근으로 전환할 자격을 갖춘 이들이 44%나 된다. 닉슨 전 대통령 이래 이 비율은 쭉 10~20%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그만큼 ‘자기 사람’을 심을 기회가 넓다.
<뉴욕 타임스>는 연방대법원의 연간 처리 사건이 80여건인 데 비해 연방항소법원은 6만여건의 최종심 역할을 한다며, 이런 식의 사법부 개편은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몇주 전 도널드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이 행정부에 참여할 법조인들을 모아놓고 젊고 매우 보수적인 판사들로 연방항소법원을 ‘접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수십 년간 법원에 둥지를 틀 강경 보수주의자들로 사회를 규율하겠다는 의도가 착착 실행되는 셈이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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