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서 연쇄살인범이 활동 중인 것 같지 않습니까?”
2010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지역 경찰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무시했다. 20~50살 여성이 목이 졸려 숨진 사건이 14건이나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는 자료가 붙어있었는데도 말이다. 이후 주검 유기 장소, 살인 뒤 방화 등 사건들의 특징을 정리한 이메일과 우편이 여러 통 더 왔고, “적어도 한 번 들여다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라는 호소도 적혀있었지만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4년 뒤, 인근 지역에서 1990년대부터 사람을 살해했다고 고백한 연쇄살인범이 체포됐다. 이메일을 보낸 토머스 하그로브(61)는 “적어도 7명의 여성이 내가 경찰에 메일을 보낸 뒤에 살해됐다”고 했다.
21일 <뉴요커>를 보면, 하그로브는 미제 살인사건 해결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살인 책임 프로젝트’를 2015년 설립했다. 그는 미국에서 1976년 이후 일어난 75만1785건의 살인사건 데이터를 갖고 있다. 연방수사국(FBI) 보유 데이터보다 2만7000건 많다. 지방자치단체가 연방수사국에 보고하지 않은 사건까지 수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데이터를 지역, 피해자 성별, 살해 방법 등 핵심 요소별로 분류해 미제 살인사건 중 연쇄살인범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한다.
기자였던 하그로브는 2004년 취재 중 성매매 관련 데이터를 찾다가 우연히 연방수사국의 방대한 살인 관련 데이터를 접했다. 통계에 능한 그는 피해자 나이, 성별, 살인 방법 등이 소상하게 적힌 자료를 보고 ‘컴퓨터가 연쇄살인범을 찾도록 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2008년부터 관련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2015년 퇴직 뒤 전직 수사관 등과 함께 ‘살인 책임 프로젝트’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미제 사건을 추적했다. 데이터는 누리집에 공개해 누구나 분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단체의 조사 결과, 미국에서 1960년대에 90%를 넘기던 살인사건 용의자 체포율은 2016년 6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디트로이트의 살인사건 체포율은 14%에 불과하다. 미제 살인사건은 1980년 이래 22만9000건이나 된다. <블룸버그>는 “아직 문서 기반으로 일하는 경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통계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고 짚었다. 하그로브는 경찰이 주 경계를 넘나들며 일어나는 연쇄살인에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연방수사국은 살인사건 중 연쇄살인 비중은 1%가량이라고 보지만, 하그로브는 현장의 디엔에이(DNA)가 일치하는 경우가 2%는 된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최소 2%가 연쇄살인일 것으로 본다. 20~50살 여성은 가장 빈번한 피해 대상이다. 경찰 인력 감소는 체포율 저하와 연관이 있다. 체포율이 낮은 지역의 살인율이 높은 것도 발견했다. 잡히지 않은 살인범이 재차 살인을 저지른다는 해석이 나온다.
애틀랜타 경찰 등은 하그로브의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방화와 살인을 연결한 데이터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많은 살인범들이 방화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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