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영국의 원외 극우 정당 대표가 올린 무슬림 혐오 영상을 리트윗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리트윗이 트럼프의 정치 기반에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여론 조사결과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440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9일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세 개의 영상을 리트윗한 바 있다. 세 개의 영상에는 각각 “무슬림 이민자가 목발을 짚고 있는 네덜란드 소년을 두들겨 패다!”, “무슬림이 성모 마리아 상을 파괴하다!”, “이슬람 무리들이 10대 소년을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린 뒤 죽을 때까지 때린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세 개의 영상은 국제 사회에서 큰 문제를 야기했다. 세 영상 모두 영국 극우 성향의 국가주의 원외 정당인 ‘영국 우선’(Britain First)의 부대표 제이다 프랜슨이 올린 것이다.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는 신속하게 “‘영국 우선’은 거짓말을 퍼뜨리고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적 내러티브로 사회를 분열하려 한다”며 “(트럼프의 행동은) 잘못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미국 워싱턴의 네덜란드 대사관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세 개의 영상 가운데 “무슬림 이민자가 목발을 짚고 있는 네덜란드 소년을 두들겨 패다”라는 설명이 달린 영상에 등장한 16살의 폭행 가해자는 “이민자가 아니”며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허프포스트 미국판은 영국의 여론 조사기관인 ‘
유거브’(YouGov)와 손을 잡고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의 리트윗을 직접 봤거나 언론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 가운데 ‘무척 못마땅하다’(strongly disapproved)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61%, ‘다소 못마땅하다’고 답한 비율은 6%로 모두 67%가 그의 리트윗에 반감을 품은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영상. 사진 트위터 갈무리.
특히 지지 정당별로 반응을 분석해보면 트럼프에 불리한 상황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유거브가 선정한 1000명의 패널 가운데 이 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민주당 지지자는 41%였던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65%에 달했다.
정당별로 보면,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의 87%가 ‘무척 못마땅’, 3%가 ‘다소 못마땅’하다고 밝혔지만, 공화당 지지자의 42%는 ‘매우 마땅’을, 24%는 ‘다소 마땅’을 택했다. 이 결과를 두고 허프포스트 US는 ‘트럼프의 리트윗은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보다 힐러리 지지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효과가 더 컸다’고 분석했다. 즉,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에 견줘 이 사건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고, 이 사건과 관련해 트럼프와 동조하는 비율 역시 높지 않았던 셈이다.
허프포스트 미국판과 유거브가 함께 조사한 트럼프의 리트윗에 대한 반응 조사. 유거브 화면 갈무리.
이번 조사에서는 해당 영상을 실제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문했는데, 민주당 지지층 뿐 아니라 공화당 지지층의 일부도 이 영상의 진위를 믿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리트윗한 영상의 설명에 대해 ‘정확하지 않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중 51%,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율은 27%에 달했다. 이 중 민주당 지지자의 65%, 공화당 지지자의 15%가 해당 영상에 대한 설명이 ‘정확하지 않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답했으며, ‘잘 모르겠다’고 답한 공화당 지지자는 36%로 나타났다.
백악관은 해당 영상이 진짜인지가 문제가 된 직후 대변인을 통해 해당 영상이 ‘실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왜냐하면) 위협이 실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0%에 가까운 시민들이 영상의 진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영상이 실제인 것이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56%가 ‘영상이 실제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19%만이 ‘영상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해당 조사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유고브에 사전 동의한 미국인 패널 가운데 미국 인구의 특성과 통계에 맞춰 선택한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