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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뉴요커의 단편 ‘캣 퍼슨’은 어떻게 영미권을 뒤흔들었나

등록 2017-12-16 11:54

지난 11일 공개된 뒤 뉴요커 온라인 최고 조회수 기록
물론 소설 ’캣 퍼슨’은 이 사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진 게티이미지스 뱅크.
물론 소설 ’캣 퍼슨’은 이 사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진 게티이미지스 뱅크.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에 실린 한 편의 단편 소설이 영미권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12월 11일 온라인에 발행한 지 일주일도 안된 상태에서 세계적 이슈가 된 이 소설의 제목은 ‘캣 퍼슨’이다. 저자는 크리스틴 루피니언(Kristen Roupenian)으로 ‘캣 퍼슨’은 루피니언의 데뷔작이다.

‘캣 퍼슨’은 “올해 우리가 냈던 픽션들 중 온라인 조회수가 단연 최고였다. 올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은 뉴요커 글 중 하나다.” 뉴요커의 대외홍보 팀장인 내털리 라비는 허프포스트에 이렇게 밝혔다.

‘캣 퍼슨’은 제목만 들어서는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고양이로 변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고양이가 나오지도 않고 심지어 고양이를 키운다고 말만하는 사람만 등장한다.

’캣 퍼슨’의 대문 사진과 이를 공개한 뉴요커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갈무리.
’캣 퍼슨’의 대문 사진과 이를 공개한 뉴요커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갈무리.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예술영화 극장의 구내 매점에서 일하는 스무 살의 대학생 마고가 주인공이다. 마고는 자신이 일하는 극장에 찾아 온 남자에게 전화번호를 준다. 남자의 이름은 로버트. 오랜 기간 문자를 주고받던 마고는 첫 데이트에서 첫 데이트치곤 어울리지 않는 영화를 보고, 세 병의 맥주를 마시고 로버트의 집에 간다. 하지만 막상 그의 집에서 옷을 벗고 있는 그를 보자니 반감이 생긴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그만두려니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그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뭔가를 강제로 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려고 자신이 했던 걸 생각하니 인제 와서 그만두라고 요구한다면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음식이 도착하자 마음을 바꿔 돌려보내는 것처럼 변덕스럽고 철없어 보일 것 같았다.”

마고는 거절을 위한 긴 대화를 하느니 섹스를 선택한다. 최악의 섹스를 한 뒤 로버트의 집에서 나온 마고는 그 뒤로 연락을 끊는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자칫 스포일러가 있어 생략한다. 3인칭 주인공의 시점에서 중간 중간 등장하는 마고의 솔직한 목소리가 이 소설의 매력이다.

이 소설은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의 요인은 미디어의 설명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온라인 미디어 복스는 ‘뉴요커의 ’캣 퍼슨‘을 두고 벌어진 소동을 설명하다’란 기사에서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이 20대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를 포착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허프포스트 US는 “젊은 여성과 그 여성이 최근 만나기 시작한 남성 사이의 애매하고 괴로운 성적 접촉을 불편할 정도로 가차 없이,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분석했다. 다수의 언론은 이 소설의 매혹적인 대문 사진을 인기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티 없이 하얀 피부의 여성과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의 키스 장면은 무척 매혹적이다.

’캣 퍼슨’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을 모으는 트위터 계정. 트위터 갈무리.
’캣 퍼슨’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을 모으는 트위터 계정. 트위터 갈무리.
또 다른 요인도 있다. 미국의 월간지 애틀랜틱은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미투’ 캠페인의 흐름 속에서 이 소설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애틀랜틱은 “‘캣 퍼슨’은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끔찍하게도 읽어내지 못하는지, 특히 여성에게 성적인 접촉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지를 탐색한다”고 분석했다. 할리우드의 거물급 프로듀서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부적절한 성적 행위에 대한 폭로가 이어진 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는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폭로가 줄을 이었다.

게다가 뉴요커는 이 소설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 공개하는 타이밍 전략을 펼쳤다. 허프포스트의 설명을 보면, 뉴요커 픽션 에디터 데보라 트레이스먼은 허프포스트 US에 “(캣 퍼슨의 원고를) 몇 주 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 주제는 시사와 관련된 것이 맞다. 그래서 우리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몇 달씩 묵히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일부 독자들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트위터에는 이 소설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만 모은 계정이 생기기도 했다. 이 계정에 올라온 몇몇 반응을 보면 “한 여자가 자신감 없는 얼간이를 만나서 자신의 성적 판타지에 맞지 않는 섹스를 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관계를 끝냈는데 남자가 화내서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4000단어로 쓸 필요가 있나”(@angryXXXX), “근데 우리는 여성의 안전이 남성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 상담의 전화는 여성을 위한 게 더 많고, 남성은 여성에게 양보하라 배우고, 여자를 때리지 말라고 가르치지”(@thefunXXXXXX)등의 반응이 올라와 있다.

온라인에서 이 소설을 읽은 20대 한국 여성 ㄱ씨는 “회사에서 눈치를 보며 한 번에 다 읽었다”며 “재밌기도 했고 너무 리얼해서 몰입해서 읽었다”고 밝혔다. 40대 남성 ㄴ씨는 “이 단편은 남성들도 꼭 읽어야 한다. 여성들이 남성과의 섹스 이후 갖는 감정을 징글징글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라며 “이 단편은 서로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성 사이의 진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근사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에서는 2016년 말에 나온 조난주 작가의 장편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 10개월 만에 27만부를 찍었다. 두 작품을 모두 읽은 ㄱ씨는 “열기의 색은 다르지만, 그 온도는 비슷한 것 같다”고 밝혔다. 두 작품을 다 읽은 30대 남성 ㄷ씨는 “남녀 모두 두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 현재나 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두 작품 모두 소설이 이슈 파이팅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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