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9월까지 ‘늙다리 미치광이(dotard)’라는 단어를 몰랐다면, 지금은 알고 있을 겁니다.”
25일 <엔비시>(NBC)와 온라인 사전 메리엄-웹스터의 편집자 피터 소콜로스키가 선정한 2017년에 월별로 유명세를 얻은 단어들엔 ‘늙다리 미치광이’처럼 속되고 ‘코브페페’(covfefe)처럼 의미불명인 단어들이 난무했다. 열거된 대부분의 단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연관돼 나왔다.
올해 트럼프 대통령은 온갖 속된 단어들로 지칭됐다. <엔비시>가 9월의 단어로 선정한 ‘늙다리 미치광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성명에서 트럼프를 지칭한 말이다. 성명은 트럼프가 유엔(UN) 총회에서 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다. 이 단어는 영어로 ‘노망난 늙은이’라는 뜻의 ‘dotard’(도터드)로 번역됐는데 14세기에 처음 쓰였다는 이 유서 깊은 단어는 미국에서조차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 단어에 대한 검색량이 치솟은 것에 대해 소콜로스키는 “뉴스를 통해 온 나라가 단어 학습을 하게 됐다”며 “하나의 작고 사소한 단어가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10월의 단어는 ‘멍청이’(moron)가 선정됐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멍청이’라고 발언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이후 틸러슨은 보도가 사실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의혹에 확신을 심어주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엔 ‘허풍쟁이’(blowhard)로 불렸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가 회고록을 내면서 한 인터뷰 때문이다. 공화당인 아버지 부시는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아닌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찍었다며 트럼프를 “허풍쟁이”라고 묘사했다.
5월의 단어로는 트럼프가 트위터에 올린 정체불명의 단어 ‘코브페페’(covfefe)가 선정됐다. 문맥상 ‘(언론) 보도’를 뜻하는 ‘coverage’의 오타로 추정됐지만, 백악관은 이것이 오타임을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과 소수의 사람은 (코브페페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밝혀 실소를 자아냈다.
선정된 단어 중 비교적 일반적인 단어도 트럼프와 ‘연루돼 있었다.’ 4월의 단어로는 ‘연루된’, ‘공모한’이라는 뜻의 ‘컴플리시트’(complicit)가 선정됐다. 이방카 트럼프가 아버지 트럼프 대통령과 ‘연루돼 있다’는 비판에 대해 “연루돼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만일 연루됐다는 게 좋은 일을 위한 힘이 되길 원한다는 뜻이라면 나는 연루돼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한 영향이다. ‘컴플리시트’의 사전적 의미는 ‘부정적 행위에 관여하거나 함께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려 한 데 대해 소콜로스키는 “그(이방카)가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는 건 정말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2월의 단어는 ‘민주주의’(democracy)로 선정됐다. 올해 1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워싱턴 포스트>가 자사의 표어를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로 바꾼 것이 선정의 계기가 됐다.
그밖에 지난해 미국 대선에 트럼프의 측근들을 다리 삼아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 선거캠프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가 기소되면서 10월엔 ‘멍청이’와 함께 ‘기소’(indictment)와 ‘공모’(collusion)도 이달의 단어로 선정됐다. 1월의 단어는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미국의 현 상황을 ‘살육’(carnage)이라고 묘사하면서 ‘살육’이 꼽혔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살육, ‘황폐’(disrepair), ‘박멸’(eradicate) 등 부정적 단어를 많이 사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7월의 단어로는 갖은 구설 끝에 임명된지 10일만에 해임된 앤서니 스카라무치 전 백악관 공보국장 탓에 ‘스카라무치’가 단어로 선정됐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