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양 옆의 모니터로 경제 관련 성명을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변인들과 백악관 내부 사정을 폭로한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의 저서 <화염과 분노> 출간을 금지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저자는 트럼프에 “고맙다”며 오히려 출간일을 앞당기기로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가 4일 <화염과 분노: 트럼프의 백악관 내부>를 발간할 예정인 ‘헨리홀트앤드컴퍼니’ 출판사에 출판과 공개, 배포를 즉시 중지하고 책의 사본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변호사들은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 사장이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매체는 또 트럼프의 변호사들이 책의 주요 취재 대상자인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에게 ‘배넌이 트럼프의 명예를 훼손했을 가능성이 있고 트럼프와의 고용 계약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3일 보냈다고 했다.
<가디언> 등이 출간 전 입수해 4일 보도한 이 책의 발췌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그를 모자란 사람 취급한다는 내용, 큰딸 이방카가 대통령을 꿈꾼다는 내용을 비롯해 ‘준비된 대통령’이 아닌 트럼프의 면모를 낱낱이 폭로하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는 배넌이 “정신을 잃었다”며 분노했다.
출간일인 5일 새벽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3위를 나란히 차지한 <화염과 분노>의 다양한 판본들. 아마존 누리집 갈무리
트럼프 쪽의 출판 중지 요구에도 책은 오히려 예정보다 더 빨리 나온다. 저자인 울프는 4일 트위터에 “책을 내일(5일) 살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고마워요”라고 올렸다. 당초 이 책의 출간 예정일은 9일이었다. <비비시>(BBC) 방송은 “트럼프 변호사들의 출판 중지 요구 서한 덕분에 트럼프는 마이클 울프와 그의 저서에 엄청난 홍보를 해줬다”며 관련 내용이 “모든 뉴스와 신문의 첫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염과 분노>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출간 전부터 양장본, 전자책 버전 등 세 가지 판본이 나란히 베스트셀러 1~3위를 꿰찼다.
한편 배넌은 3일 저녁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국 대통령은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밤낮으로 그를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4일 “어조를 정말 빨리 바꿨다”고 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이것(<화염과 분노> 논란)은 트럼프 대 배넌의 대결보다 더 중대하다. 이는 트럼프의 역량에 관한 것”이라며 트럼프가 지난 2일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2일 “내 핵버튼이 더 크고 작동도 한다”고 적은 것을 환기시켰다. 이 매체는 “<화염과 분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지엽적인 것에서 ‘위기에 빠진 백악관의 초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4일 의견란을 통해 “트럼프월드의 모든 이들은 그가 바보인 것을 안다”며 “울프의 저서를 보면 트럼프는 정보를 처리하거나 결과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고 짚었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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