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운영됐던 미국의 ‘임시 보호 지위’(TPS)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기조에 따라 잇따라 철폐되고 있다. 오는 8일에는 국토안보부가 중미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 25만명의 임시 보호 지위를 갱신할지 결정하게 된다.
<시엔엔>(CNN) 방송은 지난 17년간 이 지위를 갖고 합법적으로 거주했던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곧 닥칠 암울한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고 6일 보도했다. 1990년 미국 의회는 무력 충돌이나 자연재해의 결과로 미국에 들어왔으나 강제 귀국할 경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임시 보호 지위를 만들었다.
이 지위를 가진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은 2001년 1월 규모 7.7의 강진을 겪은 뒤 대거 미국으로 왔다. 당시 지진으로 1100여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이들이 일자리를 얻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18개월짜리 임시 보호 지위를 줬다. 17년간 이 비자는 관례적으로 연장을 거듭했고, 이민자들은 주로 육체노동을 해왔다. 하지만 오는 3월9일 이후의 이들의 운명은 예견하기 어렵다. 이 지위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2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미국을 떠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 권리를 대변하는 쪽에선 엘살바도르인들이 성실히 세금을 냈고 경제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주장한다. 또 만연한 가난과 폭력 문제가 여전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친이민 정책을 편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지우기’의 일환으로 애꿎은 이민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미국이민개혁연맹 등에선 “이 법이 ‘임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언제든 이민자를 돌려보낼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자국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등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이 보내오는 돈은 이 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웃돈다. 휴고 마르티네즈 엘살바도르 외무장관은 “(미국의 추방 조처가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실업자는 더 늘어나고, 수많은 가구가 의존하는 송금액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10개국 출신 43만7천명에게 이 지위를 줬으나,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이미 아이티와 니카라과, 수단 출신에 대해 이 지위를 종료할 계획을 밝혔다. 엘살바도르에 이어 네팔, 소말리아, 시리아, 예멘 이민자들의 임시 보호 지위 갱신 여부도 올해 결정된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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