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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마틴 루터 킹 탄생일에 흑인 모욕한 10대 학생들

등록 2018-01-19 11:54수정 2018-01-19 13:43

SNS에 흑인 모욕 영상·사진 올려

흑인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는 할리 바버. 트위터 영상 갈무리.
흑인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는 할리 바버. 트위터 영상 갈무리.
미국의 10대들이 흑인 운동의 상징적 기념일인 ‘마틴 루터 킹 탄생일’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흑인 모욕 영상과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뜨려 미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미국에서 1월 셋째 주 월요일(올해는 15일)은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탄생을 기리는 국가 휴일이다. 이날 앨라배마 대학교의 학생인 19살 할리 바버는 자신의 ‘핀스타그램’(Fake Instagram)에 흑인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영상을 올렸다. ‘핀스타그램’은 사진 중심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 운영하는 ‘제2의 계정’을 일컫는다. 10대와 20대들이 주로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다. 익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사진을 프로필에 걸어두는 경우가 많아서 ‘사칭 계정’과 혼동되기도 한다.

핀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바버는 공중화장실의 수도꼭지를 잠그며 “난 물을 낭비하지 않아. 시리아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 때문이지. 나는 흑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좋아하지. 왜냐하면 나는 ‘니X’(‘N’으로 시작하는 흑인을 모욕하는 단어)들을 정말 싫어하거든. 내가 흑인들을 정말 싫어하지만 방금 물을 아껴서 흑인들을 구했다는 사실이 정말 재밌지”라고 말했다.

흑인 인권운동으로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는 마틴 루터 킹 탄생일에 이런 영상을 올렸다는 사실 때문에 영상을 본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바버가 올린 영상은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비난 댓글과 함께 널리 퍼졌다. 이 영상을 캡처해 공유한 한 인스타그램 사용자(@TarisXXXX)는 “백인 여자애가 핀스타그램에서 ‘니X’라는 단어를 연발한다. 가짜 계정이라고 해도 안전하지는 않을텐데”라고 협박성 글을 쓰기도 했다. 일부는 그녀가 자신의 프로필에 ‘알파 파이’(국제적인 여자 대학생 클럽) 소속이라고 적어둔 걸 보고 해당 클럽에 그녀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버는 영상을 추가로 올려 달아오른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같은 날 바버는 “나는 알파 파이 소속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얼마나 알파 파이에 들어가고 싶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근데 핀스타에서 내가 ‘니X’라는 말을 좀 했다고 해서 뭐 어쩌라고? 상관 없어. 마틴 루터 킹 탄생일이라도 상관 없어. 내가 말하고 싶은 만큼 말할 거야”라고 말하는 영상을 올렸다. 바버는 이 몇 문장을 말하며 사이사이에 ‘F’로 시작하는 욕설과 ‘N’으로 시작하는 흑인 모욕적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바버의 영상이 낳은 파장은 SNS 세계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알파 파이 클럽은 물론 바버가 재학 중인 앨라배마 대학교까지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고, 클럽과 앨라배마 대학교는 결국 바버를 퇴출 및 퇴학 조처했다. 앨라배마 대학교의 학장 스튜어트 벨은 “매우 모욕적이고 깊은 상처를 주는 영상”이라며 “이 학생의 행동이 우리 대학교 다수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학생들이 보다 높은 기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벨은 “이 혐오, 모욕, 무지로 가득찬 영상을 보고 상처받은 모든 분께 용서를 구한다”며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바버의 대표성을 거듭 부인했다.

클럽과 대학에서 쫓겨난 뒤에야 바버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바버는 셀 수 없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며 “기분이 끔찍하다. 기분이 너무 나쁘고 미안하다”고 밝혔다. 학교에서 재적 처분을 당하고 뉴저지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바버는 뉴욕포스트에 “정말 정말 몹쓸 짓을 했다”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했고 용서를 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허리케인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올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허리케인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올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하지만 SNS에서 흑인 혐오 발언으로 주목을 끈 이는 바버 만이 아니었다. 미국 유타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마틴 루터 킹 탄생일에 두 명의 학생이 목을 매다는 듯한 사진을 올리며 “행복한 ‘니X’의 날”이라는 표현을 썼다.

<데일리메일>의 설명을 보면, 이 두 명의 학생이 다니는 허리케인 고등학교에는 878명의 재학생 가운데 87%가 백인이고 0.2%만이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다. 해당 매체는 이런 극단적 인종 구성은 이 학교가 속한 지역과 거의 비슷하다고 전했다. 허리케인 고등학교가 있는 허리케인 시의 인구는 1만5000명인데 이 가운데 84%가 백인이다. 학교는 이들을 교칙에 따라 처벌했으나 처벌의 수위를 밝히지는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바버 사건을 보도하며 이런 사건을 보면 인종차별이 미국 사회에서 사라졌다는 일부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박세회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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