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난자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브리짓 애덤스가 만든 블로그 ‘난자보험(Eggsurance)’ 누리집 화면. 사진출처: 난자보험 누리집 갈무리
“난자를 얼려라, 커리어를 해방하라”
4년 전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 커버스토리로 ‘냉동난자’ 반향을 일으켰던 브리짓 애덤스가 장밋빛 기대와 전혀 달랐던 냉혹한 현실을 털어놨다. 냉동난자는 선진국에서 일과 출산을 둘 다 포기하기 싫은 여성들에게 선택지를 넓혀주는 ‘미래 아기를 위한 보험’으로 여겨졌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직원 복지 차원에서 냉동난자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냉동난자로 아이를 갖고자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토론이 거의 없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7일 꼬집었다.
잘 나가는 기술 마케팅 회사에 다녔던 애덤스는 30대 후반 냉동난자를 통해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직장에서 전성기와 산모로서 가임기가 겹치는 데서 오는 고민을 내려놓고, 몇년 더 커리어를 쌓은 뒤 좋은 남편을 만나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비용 1만9000달러(약 2000만원)를 기꺼이 지불할만큼 믿음이 컸다. <블룸버그>에 기사로 소개된 이후엔 전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던 여성들로부터 이메일이 쏟아졌다. 애덤스는 ‘난자보험’(Eggsurance)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여성들에게 ‘로드맵’도 제시했다.
45살 생일을 맞은 2017년 초, 예상과 달리 좋은 남편감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싱글맘이 되어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했다. 애덤스는 믿고 얼려두었던 난자 11개를 해동하기로 결심했다. 정자 기증자도 선택했다. 이제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냉동난자 출산은 기대했던 것처럼 전개되지 않았다. 난자 2개는 해동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세 개는 수정에 실패했다. 남은 6개 가운데 5개는 수정할 수 없는 이상란이었다. 마지막 남은 난자 1개를 착상시켰지만, 3월7일 “실패”라는 통보를 받았다. 애덤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애덤스는 “야생동물처럼 포효하며” 책과 노트북 컴퓨터를 집어던진 그날을 회상했다. “내 인생 최악의 날 중 하나였다. 너무 많은 감정이 들었다. 슬펐고,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왜 나야? 내가 뭘 잘못했지?’ 질문했다.” 애덤스는 결국 난자와 정자를 모두 기증받아 체외수정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오는 5월 딸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지만, ‘해피 엔딩’이라고만 기억하기엔 가혹한 인생의 암흑기를 거쳐야 했다.
냉동난자 회사는 난모세포 동결보존을 ‘시간을 멈추게 할 신기술’로 광고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2009년 475명에 불과했던 냉동난자 시도 여성이 2015년 거의 8000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확산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평균적으로 36살에 난자 10개를 냉동한 뒤 실제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30~60%라고 소개했다. 난자를 냉동하는 여성의 나이가 어릴수록, 냉동하는 난자의 숫자가 많을수록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인간의 생식> 2017년 4월호 자료를 보면, 35살 이하 여성이 난자 30개를 냉동했을 때 성공확률은 97%에 이른다. 44살 여성이 난자 6개를 냉동할 경우 성공확률은 5%로 낮아진다.
확률적으로는 그렇지만 개인차가 워낙 커서 데이터를 토대로 성공 확률을 전망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애덤스의 친구 상당수도 ‘냉동난자 얼리 어댑터’였으나, 지금은 애덤스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냉동난자를 통한 임신·출산 성공 확률은 실제로 복불복에 가깝다. 로스앤젤러스에 사는 교수 에이미 웨스트(43)처럼 운좋은 사례도 있다. 에이미는 20대 때부터 37살에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했다. 37살이 될 때까지 결혼도 정교수 임용도 어려워지자 2011년 냉동난자를 선택했다. 26개의 난자를 얼렸고, 마흔살에 이를 해동해 넉달간 두번의 시도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웨스트는 22개월 전에 아들을 낳았고 아직 남아있는 냉동난자도 많다.
버지니아주 간호사 캐롤라인 괴릭 리(46)는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처음 냉동난자를 접했다. 대가족을 꾸리려 25개 난자를 냉동했다. 다행히 쌍둥이를 출산했으나, 나머지는 이상란 또는 유산으로 잃었다. 호놀룰루의 작가 메이메이 폭스(44)는 결혼 뒤 냉동난자를 사용하려 했으나, 다른 병원으로 난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18개 난자 모두가 파괴됐다. 폭스는 3년간 전통적인 체외수정과 치료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쌍둥이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 보조생식기술학회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미국에서 약 2만여명의 여성이 냉동난자를 시도했다. 뉴욕대는 2004년부터 냉동난자를 시행했는데, 그 후로 약 150여명의 아기가 해동난자를 통해 태어났다. 50~60% 성공률을 보이고 있지만,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수치다. 냉동난자의 선구자인 제임스 그리포 뉴욕대 랭곤 건강센터 박사는 “출산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은 모두 소설이고 부정확하다”며 “더 많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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