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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국 스포츠팀들의 ‘인디언 추방 투쟁’

등록 2018-01-30 15:27수정 2018-01-31 13:59

“원주민에 대한 모욕과 인종주의 상징” 지적에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유니폼에서 인디언 빼기로
부족명, 희화화 캐릭터 쓰던 다른 종목 팀들도 변경
일부는 “용맹함 상징”·“팬들 지지” 주장 버티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로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로고.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미국인들은 기념품이라도 간직하듯 인디언 부족 이름이나 인디언 형상을 상표로 즐겨 쓴다.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아파치 헬리콥터처럼 현대 무기에도 인디언 무기나 부족 이름을 쓴다. 원시적 무기로 화포에 맞선 용맹함을 기리는 취지도 있겠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을 희화화하고 대상화하는 불쾌한 문화다.

<뉴욕 타임스>는 메이저리그 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트레이드마크로 써온 ‘와후 추장’ 로고를 내년부터 유니폼에서 빼기로 해 원주민들의 스포츠 팀을 상대로 한 싸움이 또 하나의 승리를 거뒀다고 29일 보도했다. 클리블랜드는 추신수 선수가 뛴 팀이다.

지난해부터 로고 사용 중단을 요구해온 메이저리그의 롭 맨프레드 총재는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그 로고를 쓰는 게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내 의견에 클리블랜드의 폴 돌런 회장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돌런 회장은 “많은 팬들이 와후 추장에 오랫동안 애착을 보여온 사실을 알지만, 결국 2019년부터 유니폼에서 그 로고를 제거하기로 맨프레드 총재와 합의했다”고 했다.

클리블랜드가 70년간 사용한 캐릭터를 유니폼에서 빼기로 한 결정은 갑작스럽다기보다는 지난 20~30년간 원주민 단체 등이 줄기차게 벌여온 로고 퇴출 운동의 결과다.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프로그레시브 필드 입구에서는 개막전이나 플레이오프 때 항의 시위가 이어져 왔다. 2016년에는 캐나다 원주민 운동가가 와후 추장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토론토에서 경기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현지 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클리블랜드는 메인 로고를 철자 ‘C’로 단순화한 ‘블록 C’로 바꾸고, 와후 추장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은 포스트시즌 등 주요 경기 때만 입었다.

이번 조처로 클리블랜드는 홈구장에서 와후 추장 이미지를 넣은 배너 사용도 중단한다. 다만 팬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다며 구장 기념품점에서는 이 유니폼을 계속 팔기로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토마호크 도끼가 그려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유니폼.
아메리카 인디언의 토마호크 도끼가 그려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유니폼.
원주민 단체 쪽에서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인디언스’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라고 요구했다. 특정 인종 그룹을 마스코트나 팀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모욕적이고 인종주의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클리블랜드가 인디언스라는 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897~1899년 이 지역의 다른 야구팀에서 뛴 원주민 출신 선수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역시 메이저리그 팀으로 로고에 원주민들의 토마호크 도끼를 그려넣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대해서도 로고를 바꾸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인디언 캐릭터 논란은 야구뿐 아니라 프로, 대학, 고교의 다양한 스포츠 팀을 둘러싸고 제기돼 왔다. 2005년에는 미국대학체육협회가 여러 구기 종목 팀들에 ‘싸우는 수족’(Fighting Sioux)이라는 이름을 쓰는 노스다코타대를 “적대적이거나 모욕적인” 인디언 마스코트를 쓰는 18개 팀 중 하나로 꼽아 포스트시즌 토너먼트 개최권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용맹으로 이름을 떨친 수족은 다코타족으로도 불렸다. 노스타코타대는 2015년 압박에 굴복해 팀 이름을 ‘파이팅 호크스’로 바꿨다. 머리에 깃털을 꽂은 인디언의 모습을 담은 로고를 쓰던 뉴욕 세인트존스대는 1994년에 팀 이름을 ‘레드맨’에서 ‘레드 스톰’으로 바꿨다.

인디언 추장 두상을 그려넣은 프로풋볼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헬멧.
인디언 추장 두상을 그려넣은 프로풋볼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헬멧.
전통을 지키려는 저항도 이어진다. 인디언 추장 두상을 로고에 담은 명문 프로풋볼팀 워싱턴 레드스킨스가 논란의 중심이다. 로고 사용을 금지시켜달라는 소송까지 제기됐으나 지난해 연방대법원에서 “정부가 상표를 규제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인들도 어학사전도 인종주의적 표현(레드 스킨)이라고 규정하는 팀 이름과 로고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 팀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용감함과 힘을 상징하는” 로고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래된 로고에 집착하는 일부 팬들은 유니폼과 팀 이름이 바뀌어도 과거 유니폼을 입고 응원전에 나서기도 한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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