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혹행위와 불법 구금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온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쿠바 관타나모만의 미국 해군기지에 있는 이 수용소는 전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폐쇄를 강력히 추진한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국정연설에서 “군의 구금 정책을 재검토하고 관타나모만의 구금 시설을 유지하라”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명령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합법적 상황에서 국가를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면 관타나모만 해군기지에 추가로 수감자를 보내겠다”고 했다.
미국이 2001년 9·11 사건 뒤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주로 중동에서 체포한 이들을 가둬온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 안팎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이 문제가 됐다. 많을 때는 700명 넘게 가둔 이 시설에서는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해 물고문 등 가혹행위가 조직적으로 가해졌다. 수감자 9명이 사망했으며 그 중 6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적 전투원’으로 규정된 수감자들은 국제 협약에 따른 포로 대우를 부인당하면서도 미국 법률에 따른 기소와 재판 절차도 없이 무기한 구금돼 불법 논란이 들끓었다.
이 수용소를 “미국 역사의 슬픈 장”이라고 부르며 폐지 공약을 내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에 1년 안에 폐쇄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의회는 수감자들을 본토로 이송해 재판 받게 하겠다는 계획을 입법으로 저지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당시에 200명을 웃돈 수감자들을 석방하거나 제3국으로 이감하면서 수용소의 역할을 축소해 지금은 41명이 남았다.
이번 행정명령은 테러에 단호하다는 정치적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목적에다 오바마 행정부의 흔적은 무엇이든 청산한다는 기조에 따른 것이다. 대선 후보 때부터 관타나모 수용소의 ‘부활’을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어리석게도 수백명의 위험한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줘 이슬람국가 지도자 알바그다디 등을 전장에서 다시 맞닥뜨렸다”고 주장했다.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2004년에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억류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간 병원에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들은 악마다”, “가능하다면 그들을 절멸하는 수밖에 없다”며 다분히 종교적이고 묵시록적인 언사를 썼다. 또 “그들은 단순한 범죄자들이 아니라 불법적 적 전투원”이라며, 미국 사법 절차나 국제법에 따라 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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