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11일 로빈 윌리엄스(63)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약 5개월 동안 미국 내 자살 건수가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충격적인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미 과학저널 <플로스 원>은 7일 2014년 8월11일부터 그해 말까지 미국에서 1만8690명이 자살했으며, 이는 예상치인 1만6849명보다 약 10% 늘어난 수치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책임자인 데이비드 핑크 컬럼비아대의 메일 보건대 교수는 <시엔엔>(CNN) 방송에 “디지털 시대에 유명인 자살의 결과를 살펴본 첫 연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핑크 교수와 동료들은 1999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통계를 근거로, 2014년 8~12월 자살 수치를 예측했다. 이에 따르면 1만6849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분석됐으나, 실제로는 9.85%(1841명)가 더 많은 1만869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성과 여성, 연령대를 불문하고 이 기간 동안 모두 예상치를 뛰어넘는 자살 증가세를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남성이 예측치보다 1398명 더 많았고, 특히 30~44살 남성이 예측보다 557명 더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숨진 할리우드 스타 로빈 윌리엄스가 2007년 3월24일 뉴욕에서 열린 싱어 송 라이터 엘튼 존의 60번째 생일파티에 참석한 모습. 뉴욕/ 로이터 연합뉴스
자살이 급증한 시기와 함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 방법이다. 윌리엄스는 집에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확인됐는데, 연구 기간 동안 특히 질식에 의한 자살 수치가 급증했다. 윌리엄스와 같은 방법으로 자살한 사람이 32% 늘어난 반면, 다른 방법에 의한 자살은 3%만 늘었다. 핑크 교수는 “미디어 보도가 자살 고위험군인 위기에 처한 미국 중년 남성에게 (자살에) 필요한 능력(정보)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베르테르 효과의 원인을 미디어 보도로 단정 짓지 않았다. 하지만 윌리엄스 사망 뒤 거의 ‘24시간 보도 경쟁’으로 죽음의 디테일들을 보도하기에 바빴던 언론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보고 있다. 핑크 교수는 “이 연구는 일반적인 우리의 행동, 특히 자살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해준다”며 “자살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정책 입안자와 연구자들은 전통적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자살 행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구체적인 방법을 보도하지 말고, 원인을 섣불리 추측해 보도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자살은 피해야만 하는 희소한 사건이며, 결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것도 권고한다. 윌리엄스 사례는 물론 대부분 유명 인사의 자살 사건 보도에서 이런 가이드라인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캐나다 자살예방센터는 이례적인 사례로 록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자살 사건을 들고 있다. 코베인 사건은 뜻밖에 그의 고향이기도 한 시애틀의 자살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신 자살위기 상담센터 문의 전화가 증가했다. 신문 방송 등 전통적인 미디어들이 당시 자살의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한 반면 자살예방 관련 메시지를 기사에 덧붙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핑크 교수는 “이런 주의 깊은 보도가 아마도 모방 자살을 예방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