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바로 뒤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가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 중이었던 지난 10일 북한 대표단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회동 2시간 전에 북한 쪽이 취소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 대표단은 10일 아침까지도 만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몇시간 뒤 회동을 취소했다”며, 부통령실은 ‘북한 쪽이 회동을 취소하면서 펜스 부통령의 탈북자 면담과 새로운 제재 선언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회동에는 미국 쪽에서 펜스 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정보기관 관계자, 닉 아이어스 부통령 비서실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며, 북한 쪽에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이 회동이 펜스 부통령 방한 2주 전부터 논의됐으며, 북한 쪽이 펜스 부통령의 한국 체류 기간 중 그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중앙정보국(CIA)의 말을 전해듣고 회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구상이 한국 쪽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회동 제의에 대해 펜스 부통령은 출국 며칠 전인 지난 2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 정권과 협상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회동의 목표에 합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 북-미는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기로 합의했으며, 회담에 한국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헤어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북한이 회동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사실상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확인해준 셈이다.
펜스 부통령 쪽의 이번 ‘언론 플레이’는 한국에서의 초강경 대북 행보에 대한 미국 언론과 대화파들의 비판에 부담을 느끼고 북-미 접촉 불발의 책임을 북한으로 떠넘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막후 접촉 과정은 공개하지 않는 외교적 불문율을 어긴 것이어서 또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게다가 그가 한국에서 보인 ‘어깃장 행보’에 비춰볼 때 북한과 접촉할 진지한 의지가 있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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