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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 “노예제는 선택의 문제” 파문

등록 2018-05-03 15:00수정 2018-05-03 16:41

역사학자들 “실망했고 끔찍”…언론들도 비판 나서
티엠지(TMZ)의 인터뷰에 등장한 카니예 웨스트. 사진 TMZ 영상 갈무리.
티엠지(TMZ)의 인터뷰에 등장한 카니예 웨스트. 사진 TMZ 영상 갈무리.
미국의 연예 매체 티엠지(TMZ)와의 인터뷰에서 힙합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카니예 웨스트가 ‘노예 제도는 선택의 문제’라고 발언해 미국 사회에서 거센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1일 카니예 웨스트는 TMZ의 뉴스룸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노예 제도에 대한 극단적 견해를 펼쳤다. 웨스트는 “노예 제도가 400년이라는 얘기를 듣는다”며 “400년이라고? 그건 선택의 문제처럼 보인다. 우리가 전부 400년 동안 노예였다고? 그건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감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노예제’라는 말이 흑인이라는 개념과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라며 “흑인에게 노예 제도는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와 비슷하다. 노예제는 흑인들의 것,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의 것. (반면에) 감옥이라는 표현은 흑인과 백인을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묶어주는 단어”라고 밝혔다. 이어지는 영상에서 웨스트는 TMZ의 뉴스룸을 향해 “내가 느끼는 걸 여러분도 느끼냐”며 “내가 자유로워진 걸 느끼느냐. 난 내가 자유롭다고 느낀다”고 외쳤다.

카니예 웨스트의 발언에 반박하고 나선 TMZ의 프로듀서 밴 레이선. 사진 TMZ 영상 갈무리.
카니예 웨스트의 발언에 반박하고 나선 TMZ의 프로듀서 밴 레이선. 사진 TMZ 영상 갈무리.
이 발언을 현장에서 들은 TMZ의 선임 프로듀서 밴 레이선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레이선은 “사실 난 당신이 아무 생각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짓은 아무 생각이 없어서 하는 짓”이라며 “당신은 그런 말을 해도 되고 그럴 권리가 있지만, 당신이 말한 모든 것이 실제 삶과 현실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레이선은 이어 “당신이 음악을 만들고 재능으로 일군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나머지는 우리 인생을 위협하는 것들을 상대해야 한다”며 “당신이 선택이라고 말한 400년 동안의 노예제도 때문에 생긴 사회적 소외에 직면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레이선은 웨스트를 향해 “솔직히 실망했고 끔찍하다”며 “사실이 아닌 걸 믿고 있는, 변해버린 당신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

카니예 웨스트의 발언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길래 레이선이 이를 즉각 반박하고 나선 걸까. 노예제는 ‘선택’이라는 그의 애매한 발언은 두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하나는, 노예 제도가 유지됐던 당시 노예들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예가 됐다는 의미에서의 ‘선택’이다. 다른 하나는, 이제는 과거의 유산인 노예 제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의미에서 ‘선택’이다. 주요 언론과 학자들은 두 가지 관점 가운데 어떤 것이든 비판받아야 할 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블레어 켈리는 트위터를 통해 “실제로 수업에서도 어린 학생이 ‘나를 노예로 만들 순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사람들은 당시 자신의 고향에서 떨어져 학대당하며 수백 마일을 걸어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 다다른 이들의 격리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노예 성’(노예들이 거래되던 성)에서 벌어지던 잔혹함을 잘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노예 제도가 있던 당시 시대 사황이 노예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만만했던 게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400년 동안 이어진 노예제는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쓰인 그대로 있었던 물리적인 사건”이라며 “300명의 노예를 탈출시킨 해리엇 터브먼처럼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흑인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망치다 잡혀서 심한 형벌을 받거나 냇 터너처럼 죽은 경우도 있다”고 반박했다.

‘노예제는 선택이었다’는 논리는 미국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주로 내세우는 주장으로 우리로 따지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들의 논리와 맥락이 비슷하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부의 조교수인 역사학자 레아 라이트 리거어(Leah Wright Rigueur)는 “‘노예제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내세우는 오래된 논리”라며 “이런 것은 ‘자유로운 발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웨스트의 발언이 이제는 과거의 유산인 노예 제도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의미에서 ‘선택’이었다고 해도 문제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포브스>는 ‘카니예, 안됐지만 노예제는 선택이 아닙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인신을 거래하고 인간을 학대한 것 외에도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의 인종이 열등하다는 편견을 일반화했고, 이러한 인종 편견이 지금도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인종적 편견이 여전한 미국 사회에서 개인이 과거의 유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는 건, 구조적 편견에 휩싸인 이들을 외면하고 각자도생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웨스트처럼 미국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유명인이라면 그런 인식의 문제점은 더 심각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웨스트는 노예제를 이제는 과거에 묻어둘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미국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를 반복해 보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고 꼬집었다.

파문이 확산하자 카니예 웨스트는 트위터를 통해 “당연히 나도 노예들이 자유 의지로 족쇄를 차고 배에 올라탔다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이 말한 ‘선택’의 의미가 후자임을 밝혔으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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