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의 핵 협상을 ‘게임’으로 일컬어
부동산거래 달인 “나만큼 잘하는 이 없어”
공격적 협상으로 고위험 고수익 추구 성향
국내정치 악재들도 북-미 회담 집착 요인
부동산거래 달인 “나만큼 잘하는 이 없어”
공격적 협상으로 고위험 고수익 추구 성향
국내정치 악재들도 북-미 회담 집착 요인
“누구나 게임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선언으로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이틀 뒤 태연하게 한 말이다. 대화 상대방을 ‘게임’의 상대로 보고 크고 작은 강온 전략으로 승리를 만들어가겠다는 그의 승부사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나만큼 거래를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 앉아 일생일대의 거래에 나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스타일 때문에 지난해 취임 뒤 수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그런 기질이 있었기에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었다. 그는 부동산 사업에서 억만장자 성공 신화를 일군 사업가이자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로 명성을 쌓은 ‘연예인’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든 이 두 가지 핵심 배경은 협상 스타일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평생을 비즈니스 협상이라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큰 수익을 노리고 크게 판돈을 거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구사해왔다. 1987년 펴낸 책 <거래의 기술>에 적은 주요 원칙이 “두려움을 버리고 크게 생각하라”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그는 지난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였다. 그는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높은 요구치를 내밀어왔고, “성과가 없을 것 같으면 회담장에서 걸어나올 것”이라고 했으며, 북-미 정상회담이 최근 확정되기 전까지도 “최대한의 압박”을 말했다. 지난달 24일에는 북한의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개심”을 이유로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한다고 발표해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다. 군사적 충돌이나 정상회담 유실이라는 고위험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회담 성사라는 고수익이 돌아왔다.
이처럼 극단의 수를 던지는 방식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특징이다. 그는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달하자 즉석에서 수용하고 이를 곧 발표하도록 했다. 당시 당황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이 북-미 정상회담 시점이라도 늦춰서 발표하도록 설득하려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그의 이런 즉흥성과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협상의 기본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해내는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에서 그 어떤 나라 정상들보다도 집요하고 철저하다. 그의 관심은 대체로 단기간에 손에 잡히는 금전적·실질적 이득에 맞춰져 있다. 그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겠다며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물론, 동맹국인 독일·영국·캐나다·프랑스 등에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경제적 보상에서도 “한국·중국·일본이 도울 것”이라며 미국의 역할은 뒤로 빼놓고 있다.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핵탄두보다도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선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기과시 욕구가 매우 크다는 점도 이번 회담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그가 북한 얘기를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얘기가 “전임 대통령들이 못 해낸 걸 내가 해낸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도 “(북한 문제는) 다른 대통령들이 해결했어야 한다. 그때 했으면 훨씬 쉽고 덜 위험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며 “내가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10일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새벽 3시께 공항에서 맞이하면서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이 시간대 텔레비전 시청률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승자로 부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는 데에 집착이 매우 강한 것이다.
세종연구소 진창수 전 소장 등은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정가를 방문한 뒤 펴낸 보고서에서 “워싱턴 조야에선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쁜 거래를 하고 대성공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진 전 소장 등은 “이것은 비핵화 협상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럼프의 개인적 기질·성향 자체에 대한 냉소적 평가와 불신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에 적극 나선 데에는 국내 정치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 435석 전체와 상원의 3분의 1(33석)을 뽑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공화당 우위 구도를 더 강화해 2020년 11월 대선에서 재선하기 위한 안정적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 이 길에 걸림돌인 ‘러시아 스캔들’과 성 추문 등을 떨쳐내기 위해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성과가 절박하다. 그로서는 잘되면 노벨 평화상까지 노려볼 수 있는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한반도, 세계가 ‘윈윈’할 수 있는 거래를 만들어낼까. 싱가포르/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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