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사주한 쿠데타 직후 민중가수를 살해한 전직 칠레 퇴역 군인 8명이 45년 만에 징역 15년씩을 선고받았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당시 41)를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퇴역 군인 8명에게 칠레 법원이 3일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이를 방조한 다른 퇴역 군인 1명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하라는 싱어송 라이터로 ‘평화롭게 살 권리’, ‘담배’ 등의 노래로 당시 남미에서 유명했던 가수이자, 연극 감독, 교수였다.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하라는 아옌데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그가 이끈 사회주의 정권을 붕괴시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의 쿠데타 직후 좌파 ‘대청소’ 과정에서 다른 500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살해당하고 며칠 뒤 산티아고 공동묘지의 공터에서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발견된 그의 주검에는 탄환 44발이 박혀있었고 심한 고문 흔적이 남아있었다.
45년 만에 단죄 받은 퇴역 군인들은 당시 위관급 또는 영관급 장교들로, 하라의 체포와 고문, 처형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중위가 하라를 처형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부하의 증언이 유죄 입증에 결정적이었다. 1990년까지 이어진 피노체트 정권 치하에서 3200명이 살해당하고 2만8000명이 고문당했다. 칠레 당국은 2009년 부검을 위해 그의 유해를 발굴하기도 했다.
하라는 피노체트 정권 치하에서 탄압을 받은 예술가 수백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2013년에는 U2와 밥 딜런이 산티아고에서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했다.
하라는 영국인 발레리나 아내와 두 딸을 남기고 떠났다. 미국 연방법원은 2016년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칠레 퇴역 군인한테 2800만달러(약 312억원)를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시민이 된 이 퇴역 군인을 추방해달라는 칠레 정부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