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소련의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오랜만에 해후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그와 포옹하며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세계는 하나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하고 있다. 우리도 평화로 가득찬 시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우리는 영속적인 평화와 지속적으로 함께하는 동-서 관계를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몰타에서 고르바초프와 내가 만들기로 한 미래의 모습이다.”(조지 허버트 부시 미국 대통령)
전 세계를 핵 절멸의 공포에 떨게 한 냉전을 극복하고 ‘미국 일극 체제’의 문을 열어젖힌 미국의 제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부시가 지난달 30일 텍사스 휴스턴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4.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파일럿 복장을 입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1924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난 부시는 2차대전이 터지자 자원 입대해 최연소(만 18살) 해군 파일럿으로 종군했다. 그는 일본 오가사와라 해역에서 일본군에 폭격기가 격추된 뒤 미국 잠수함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폭격기엔 그의 연인이자 이후 그와 70여년의 세월을 함께할 부인 바버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버라와 1945년 결혼한 부시는 두 차례 하원의원을 지낸 뒤 주유엔대사, 중국과 정식 수교 전 베이징에 설치한 미국 연락사무소장,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을 지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당내 대선 후보 경쟁에선 패했지만 이후 8년간 부통령으로 레이건 행정부를 떠받쳤다.
1989년 1월 레이건의 뒤를 이어 부시가 대통령직에 오르자 냉전 체제가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었다. 취임 연설에서 ‘강한 미국’을 주장했던 레이건과 달리 “세계에 좀 더 따뜻하고 배려 있는 미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해 7월 동유럽을 방문해 “자유롭고 하나가 된 유럽”을 호소했고, 비 내리는 부다페스트 광장에선 준비된 원고를 버리고 “마음으로 뜻을 전하고 싶다”며 즉석 연설을 했다. 4개월 뒤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그는 이데올로기보다 현실적 성과를 중시하는 뼛속까지 물든 현실주의자였다. 베를린장벽 붕괴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빠르게 변하는 세계의 일부에서 새로운 발전이 이뤄졌다. 우리는 이에 대해 경의를 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한 기자들의 추궁이 이어졌지만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다”라며 맞섰다. 부시의 신중한 자세는 당시 ‘겁쟁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소련 내 강경파들의 반발을 억누르며, 당시 소련을 이끌던 고르바초프에게 더 대담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줬다.
마침내 1989년 12월2일 미-소의 정상이 전제조건 없이 지중해 몰타섬에서 만났다. 고르바초프는 그에게 “평화로 가득찬 새 시대”의 희망을 얘기했고, 부시는 그것이 바로 당신과 내가 “만들기로 한 미래의 모습”이라고 화답했다. 냉전은 평화롭게 해소됐다.
1991년 1차 걸프전쟁의 전선 시찰에 나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미군 병사들이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냉전 해체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부시는 외국 정상들을 만나 이라크 격퇴를 설득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한 ‘합법적’ 다국적군이 결성됐다. 부시는 이라크가 데드라인을 따르지 않자 1991년 1월16일 “2시간 전 연합군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군사 목표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로 시작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1차 걸프전을 압도적 승리로 이끌자 지지도가 90%에 육박했지만, 경제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바보야, 문제는 바로 경제야”라는 구호를 내세운 40대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내줬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에 대해 “단임으로 끝난 가장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옛 ‘동료’ 고르바초프는 “부시의 역사적 성과와 공헌에 존경을 표한다. 그는 진정한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오랜 동료로 냉전 해체라는 역사의 물결을 함께 헤쳐간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기력이 쇠해 식사조차 거르며 잠들어 있던 부시는 베이커 전 장관의 방문에 오랜만에 눈을 떴다. 그는 “베이크, 우린 어디로 가고 있나”라고 물었고, “우리는 천국으로 가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1일 텍사스 칼리지스테이션에 마련된 조지 부시 대통령 도서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참배객들이 방문해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칼리지스테이션/AFP 연합뉴스
아버지를 이어 제43대 대통령을 한 아들 부시는 “당신은 놀라운 아버지였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스피커폰을 통해 말했고, 아버지는 “나도 널 사랑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부시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장을 치르기로 한 5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부시는 3일 워싱턴으로 운구될 예정이며, 이날 오후 5시 의회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3일 오후 7시30분부터 5일 오전 7시까지 조문을 받는다.
길윤형 기자, 워싱턴/ 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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