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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9 16:05 수정 : 2019.01.09 19:48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백악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연 기자회견에서, 양쪽이 보복관세 부과 등으로 격화돼 온 무역전쟁을 해소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지난달 부시 장례식 조문 때 EU 대사 꼴찌
EU 문의에 “강등 확인…통보는 깜박 잊었다”
‘국제기구 수장은 국가정상 예우’ 기준 상충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백악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연 기자회견에서, 양쪽이 보복관세 부과 등으로 격화돼 온 무역전쟁을 해소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이 자국에 상주하는 유럽연합(EU) 대표부의 외교 의전 서열을 일방적으로 낮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집권한 이후 유럽연합을 계속 깎아내리면서 ‘불편한 동맹’이 되어버린 대서양 양안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께 트럼프 정부가 유럽연합 쪽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주미 유럽연합 대표부의 외교적 지위를 격하했다고 독일의 국제방송 <도이체 벨레>가 8일 보도했다. 의전 서열 담당부처인 국무부가 유럽연합의 외교적 지위를 주권국 대표에서 국제기구 대사급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달 5일 미국 정부가 국장으로 치른 조지 허버트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 유럽연합의 데이비드 오설리번 주미 대사가 특정 행사들에 초청받지 못하면서 확인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유럽연합 쪽의 문의에 대해 미국의 장례위원회가 유럽연합 대사의 외교 의전 강등 사실을 ‘최종 확인’해주었다는 것이다. 외교가에선 그 시기를 지난해 10월말에서 11월 초 사이로 보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의 국장 때 각국 외교관들이 조문을 표명하는 의식에서, 오설리번 대사는 150여명의 조문 사절 중 맨 마지막에 호명되는 홀대를 받았다. 통상 워싱턴에 부임한 순서대로 호명되는 관례대로라면, 2014년 11월에 부임한 오설리번 대사는 당시 조문 외교관 150여명 중 의전서열 20~30위권이었다.

유럽연합의 한 관리는 <도이체 벨레>에 “우린 언제 이런 조처가 있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들(미 국무부)이 우리에게 통보하는 걸 그냥(conveniently) 잊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마야 코치얀치치 수석대변인은 8일 “최근 미국의 외교의전 순위 목록에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 조처가 주미 유럽연합 대표부에 미칠 영향에 대해 미국 행정부의 관련 부처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아무런 변화도 통보받지 못했는데, 기존의 외교 관행이 존중되길 기대한다”며 “유럽연합과 미국은 자연스러운 동반자,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앞줄 왼쪽)을 비롯한 각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에 앞서 환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1908년 루스벨트 행정부가 처음 제정한 국무부의 ‘미국정부 및 외교 의전 우선순위’ 지침을 보면, “외국의 주권국가나 정부의 수장은 외교 의전에서 미국 대통령과 동등”하다. 또 “국제기구의 수장은 주권국가나 정부의 수장과 동등한 지위로 대우하며, 그 순위는 기구 창설일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지침이 예시한 국제기구 수장에는 유엔 사무총장, 국제사법재판소장, 세계은행 총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뿐 아니라, 북남미 국가들의 협의체인 미주기구(OAS) 사무총장 등이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의 주미 상주 대표도 이런 규정에 준거해 국가 수장급 대우를 받아왔다.

28개 회원국을 거느린 유럽연합은 각국에 자체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 특히 통상 교섭권 등 외교적 대표권의 상당 부분을 회원국들한테 넘겨받은 유럽연합을 국제기구로 ‘격하’시킨 것은 유럽의 반발을 살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소재 독일외교위원회의 다니엘라 슈바르처 소장은 8일 미국 <뉴욕 타임스>에 “이번 외교적 지위 격하는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유럽연합에 대해 보여온 경멸과 그의 과도한 국가주의 성향을 상징한다”고 짚었다. 그는 “전임 정부들과 대조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교역정책 등에서 유럽연합의 통합성을 저해하려 적극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연합의 한 관리는 이날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의 항의를 받고 오설리번 대사의 강등된 지위를 최소한 잠정적으로 복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쪽은 이 문제에 대해 이날 밤 현재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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