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1 17:57
수정 : 2019.02.1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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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엘리엇 에이브럼스 베네수엘라 특사가 7일 국무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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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정권교체 주도 미 베네수엘라 특사 엘리엇 에이브럼스
1980년대 좌파정권 압박 주도…이란-콘트라사건 관련 유죄 판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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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엘리엇 에이브럼스 베네수엘라 특사가 7일 국무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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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콜롬비아 국경 지대에서 ‘기이한 대치’가 11일로 나흘째 이어졌다. 미국이 뜬금없이 보낸 인도적 지원 물품 반입 문제를 두고서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베네수엘라 ‘두 대통령’ 사태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대치는 7일 미국 국무부가 식량과 의약품 등을 실어 보낸 트럭이 콜롬비아 국경 도시 쿠쿠타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쪽은 지원품 분배를 ‘후안 과이도 임시대통령’ 쪽에 맡겼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컨테이너 박스와 유류 탱크를 이용해 국경 도로 3개 차로를 모두 봉쇄하는 것으로 맞섰다.
앞서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국 국무부 베네수엘라 특사는 7일 브리핑을 열어 “과이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지원 물품을 보냈다”며 “모든 당사국이 합법적인 과이도 정부와 상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퇴임 논의라면 모를까, 니콜라스 마두로와 대화할 시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며 “그가 권좌에 남아 있는 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식량과 의약품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쿠쿠타의 ‘대치’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지난달 23일 과이도 의회 의장이 임시대통령을 자임한 직후 그를 ‘합법적 대통령’으로 가장 먼저 인정한 건 미국이다. 미국은 이틀 뒤 에이브럼스 특사를 임명했다. 26일엔 미국의 요청으로 베네수엘라 사태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가 소집됐다. 미리 준비한 듯 발빠른 행보였다.
에이브럼스 특사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는 그의 ‘과거사’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부에 입성했다. 국무부에서 국제기구, 인권·인도지원, 미주 담당 차관보 등을 두루 거쳤다. 당시 그는 과테말라·엘살바도르·니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 좌파 진영 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제가 된 건 ‘이란-콘트라 사건’(1980년대 중반 미국 정보기관이 이란에 미사일을 판 자금으로 니카라과 우파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사건)이다. 에이브럼스는 1991년 10월 의회가 요구한 관련 정보를 의도적으로 감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지만 이듬해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 등 5명과 함께 사면됐다.
그는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공직에 복귀해 백악관 국가안보실 민주주의 전략 담당 부보좌관이 됐다. 이라크 등 중동 국가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게 주된 임무였지만, 중남미에서도 그의 입김이 거셌다. 영국 <옵서버>는 2002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복귀로 48시간 만에 막을 내린 베네수엘라 쿠데타는 에이브럼스의 승인 아래 진행됐다”고 전한 바 있다.
1999년 2월 차베스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은 국제개발처(USAID) 등을 동원해 베네수엘라 내정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6년 11월9일치 기밀 외교전문을 보면, 윌리엄 브라운필드 당시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대사는 국제개발처 등의 활동 목표로 차베스 지지층의 분열과 차베스 정권의 국제적 고립 등을 명시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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