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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8 15:32 수정 : 2019.06.28 20:27

살인 혐의로 기소된 마샤 존스.

앨라배마에서 복부 총격으로 유산한 여성 기소
“총 쏜 사람은 정당방위”, “싸움 시작한 사람 책임”
초유 사건에 법률가들도 의아…“총 맞고 싶어 맞는 사람 없어”

살인 혐의로 기소된 마샤 존스.
총을 쏜 사람이 아니라 총을 맞은 사람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는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12월4일, 임신 5개월이던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의 흑인 여성 마샤 존스(27)는 친구를 옆에 태우고 차를 몰고 있었다. 할인매장 앞에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에보니 제미선(23)이라는 여성을 목격한 그는 차에서 내려 싸움을 시작했다. 존스의 배 안에 있는 아이의 아빠와 제미선 등 셋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이였다. 존스와 제미선은 아이 아빠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관계였다고 한다.

다툼이 격해지자 제미선이 총을 빼들어 쐈다. 바닥을 맞고 튕긴 총알이 존스의 복부로 날아들었다. 존스는 이 일로 곧 유산했다. 당연히 경찰은 총을 쏜 제미선을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앨라배마주는 태아를 살인죄의 객체로 인정하는 미국의 38개 주들 중 하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제미선을 기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경찰은 돌연 입장을 바꿔, 싸움을 먼저 건 쪽은 존스이며, 제미선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경고사격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진짜로 유일한 피해자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달 26일 또다른 반전이 발생했다. 대배심이 총격을 받고 아이를 유산한 존스를 우발적 살인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존스는 27일 구금됐다. 공소장에는 그가 “(자신이) 임신 5개월 상태인 점을 알면서도 싸움을 시작해 다른 사람, 정확히는 태어나기 전 아이의 사망을 초래했다”고 돼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황당한 사건 전개에 대해 앨라배마주 제퍼슨 카운티 검찰에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대신 혐의를 벗은 제미선의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해 검찰과 대배심의 판단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취재했다. 제미선의 어머니는 “내 딸은 (사건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지갑에 넣고 다니던 총을 꺼냈다”고 말했다. 존스를 해칠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단지 경고의 의미로 바닥에 총을 발사했는데 운이 없게도 총알이 존스 쪽으로 튀었다고 했다. 앞서 현지 경찰이 밝힌 입장과 종합하면, 대배심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바닥에 총을 쏜 제미선에게는 죄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미선에게는 죄가 없으므로 대신 존스를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대배심은 살인사건 피해자(태아)가 존재하는 이상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불필요한 싸움을 유발해 자신의 배에 있는 태아를 숨지게 한 존스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결정한 것으로 짐작된다.

상식적으로도 그렇지만,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기괴한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지 변호사 리처드 재페는 “아무도 총을 맞고 싶어 하지 않는다. (총격 피해자인) 존스가 기소됐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사람이 죽었으니, 누가 총을 쏘고 누가 맞았든 좌우간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존스가 흑인이니까 쉽게 처벌에 나선 것 아니냐, 총격으로 아이까지 잃은 여성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이번 판단은 앨라배마주가 지난달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의 경우에도 낙태를 무조건 금지하는 초강력 낙태금지법을 제정한 것과 맞물려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낙태 금지를 강조하려고 존스에게 억지로 책임을 지우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지켜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죄인이라는 근본주의적 태도가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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