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작업하고 있는 인도 화가 자그조트 싱 루발이 8일(현지시각) 인도 서북부 암리차르의 작업실에서 제46대 대통령으로 조 바이든 당선자의 얼굴을 그려넣으며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암리차르/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투표 다음날인 지난 4일(현지시각)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또 세계보건기구(WHO)에 미국을 재가입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라는 트럼프 이전의 기존 국제질서를 복원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다.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및 세계보건기구 탈퇴는 트럼프가 4년 내내 보여줬던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의 상징이다. 취임 직후 이를 바로잡겠다는 바이든의 선언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복귀’를 천명한 것이다. 바이든은 지난 3월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왜 미국은 다시 주도해야만 하는가?―트럼프 이후 미국 대외정책 구하기’에서 이를 명확히 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 민주주의와 동맹을 새롭게 하고, 미국의 경제적 미래를 보호하고, 다시 미국이 세계를 지도하도록 하는 즉각적인 조처들을 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의 세계 무대 복귀는 크게 세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회복, 동맹의 복원, 미-중 관계 재정립이다.
첫째, 미국이 설계하고 주도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회복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에 의해 운용되는 것이다.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 재가입을 시작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적인 국제 제도와 기구에서 미국의 지위와 지도력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현존하는 위험인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방치해왔다. 바이든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미국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조처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무슬림 국가 국민들에 대한 입국 금지 및 이민 제한 조처를 시행했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이를 철회할 것이라고 밝혀왔고,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도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이런 조처들을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즉각 시행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전세계가 미국을 조소하도록 만든 트럼프 행정부의 흔적들을 즉각 털어내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 밤(현지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웃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둘째, 트럼프 행정부가 흔들고 취약하게 만든 동맹의 복원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패권의 주춧돌이었던 대서양 양안동맹의 회복이다. 트럼프는 서유럽의 미국 동맹국과 그 지도자에게 거듭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7년 5월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유럽 독립선언’을 했다.
트럼프는 주독 미군 감축까지 선언하며 유럽 국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해왔다. 바이든은 이런 요구를 자제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입각해 대서양 양안의 공조 회복을 대외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을 전망이다. 이를 통해 대러시아 및 대중국 문제에서 다시 공동전선을 꾸리려 할 것이다.
유럽과의 관계 회복에서 바로미터이자 걸림돌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문제다. 트럼프는 유럽연합을 폄훼하고 영국의 탈퇴를 부추겨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우선시하며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유럽연합의 무역협정에서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반면, 바이든은 브렉시트를 반대하며 유럽연합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중시해온 터라, 영국과 유럽연합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향후 국제질서와 미국의 패권에서 가장 중요한 미-중 관계의 재정립이다. 중국이 이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순응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도전자라는 인식은 바이든도 공유한다. 다만 바이든과 그 행정부는 트럼프 아래서 악화된 미-중 관계를 대결로만 끌고 갈 수 없다. 중국의 도전과 부상을 제어하면서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양자관계로 재정립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은 중국에 강경할 필요가 없다”며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국의 동맹과 동반자들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처럼 무역, 남중국해, 홍콩, 대만, 첨단기술 문제 등 각론을 놓고 중국과 정면 충돌하기보다는 국제사회의 합의로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바이든은 이 연합전선으로 “기후변화, 핵비확산, 보건안보 등 이익이 합치하는 분야에서는 베이징과 협력하면서도, 중국의 폭력적인 행태 및 인권침해에는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외정책의 각론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중동 문제와 북핵 문제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탈퇴한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수니파 국가들의 관계가 개선된 상황을 유지하면서도, 시아파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는 상충되는 과업을 달성해야 한다.
바이든은 트럼프식의 북-미 정상회담을 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공을 비핵화 쪽으로 전진시키는 실질적인 전략의 일부로써 김정은과 기꺼이 만나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더 우선시하는 산적한 대외정책 이슈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당분간 휴면 상태로 남기고, 내년 중반 이후에나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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