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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0 19:49 수정 : 2005.02.10 19:49



미국 뉴욕 퀸스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사블랑카’엔 언제나 영화 〈대부〉의 주제가가 흐른다. 시칠리아풍으로 실내장식이 된 벽의 한쪽엔 이곳을 방문했던 유명 배우들, 조니 뎁이나 케리 그랜트 등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이곳이 뉴욕 마피아의 ‘마지막 대부’로 불리는 조지프 매시노(62)의 거점이다. 2000년 5대 마피아 패밀리 중 4개 조직을 불러놓고 ‘마지막 대부’로 정식 인정받았던 곳도 여기다.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지난달 28일 〈뉴욕타임스〉엔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실렸다. 매시노가 감옥에서 검사 암살 계획을 알리는 부하 조직원의 얘기를 몰래 녹음해 검찰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마피아에게 ‘오메르타’(침묵의 규율)는 가장 소중한 계율이다. 이걸 어기는 건 곧 죽음을 뜻한다. 누구보다 ‘배신자’들에게 가혹했던 게 매시노였다. 그런 그가 검찰에 협조했다는 소식에 전향한 전직 마피아 단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 ‘마지막 대부’ 매시노
조직음모 검찰에 밀고 충격

이 사건은 전설적인 뉴욕 마피아의 종언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마피아 고위 간부들이 연방수사국(FBI)에 협조한 사례는 여럿 있지만, ‘돈’(이탈리아어의 경칭)이라 불리는 대부가 정보를 누설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매시노는 ‘최후의 전통적 마피아’로 불렸다. ‘도니 브레스코’로 더 잘 알려진 전직 연방수사국 요원 조 피스톤은 지난해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매시노는 마피아의 정서와 전통, 그리고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마지막 인물”이라고 나름의 존경심을 표시했다.

90년대 전통방식으로 재건

매시노의 출세와 체포, 변절의 과정은 그대로 한시대를 풍미한 마피아의 몰락의 역사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그의 재판은 “1930년대 이래 계속돼온 연방수사국과 마피아의 오랜 싸움의 종언을 알리는 의식”이라고 연방수사관들은 말한다.

마피아 5대 계파의 하나인 보내노는 1980년대 초 거의 와해됐다. ‘도니 브레스코’란 이름으로 이 조직에 잠입해 5년간 활동한 연방수사국 요원 조 피스톤의 정보 누설로 200여명의 조직원들이 체포됐다. 이걸 다시 일으켜 세운 이가 매시노다. 그는 전통적 마피아의 방식대로 조직을 재건했다. 각 하부조직이 서로를 모르게 하고, ‘배신자’는 가차없이 처단했다. 5대 계파 중 유일하게 마피아의 고향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조직원을 충원했다. 연방수사국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조직원들이 매시노의 이름을 말할 때는 이름 대신에 자신들의 귀를 톡톡 치도록 했다.


1970년대 이후 할리우드가 마피아를 영화 소재로 활용하면서, 역설적으로 마피아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영화 〈대부〉나 인기 드라마 〈더 소프라노스〉처럼, 갱을 다룬 극영화들은 마피아들에게 허영심을 불어넣었다. 마피아들은 영화에서처럼 자신들이 절대 패배하지 않고, 카리스마와 매력을 갖춘 것처럼 과시하려 했다. 심지어 보내노 파의 전 두목이었던 빌 보내노(71)는 지금 조 피스톤과 함께 마피아를 소재로 한 책을 저술하고 있다. 연방수사국 요원들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마피아들의 이런 ‘자만심’은 가장 쉽게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약한 고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시노는 달랐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나이트클럽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동료 마피아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정장을 좋아하는 다른 마피아들과는 달리,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좋아했다. 매시노는 대중에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다른 마피아 두목들이 모두 감옥에 간 틈을 타 그는 보내노 파를 ‘뉴욕 최대의 마피아 조직’으로 끌어올렸다는 게 수사당국의 평가다.

2인자 배반으로 체포당해

연방수사국은 별도로 매시노 팀을 두고, 그를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다. 몰래 촬영한 그의 사진이나 녹음자료, 은행기록 추적 등의 서류가 사무실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시노는 2003년 1월 체포됐다. 보내노 파 2인자이자 매시노의 의형제인 살바토르 비텔리가 ‘배신’해 수사당국에 협조했기 때문이다.



매시노는 지난 18년간 8명의 마피아 경쟁 조직원이나 ‘배신자’를 살해교사한 혐의로 재판 중이다. 1994년 조직범죄의 살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이후, 그는 사형 판결을 받는 최초의 마피아 두목이 될지 모른다. 최근 그가 자기 조직원의 검사 살해 계획을 밀고한 것도 사형을 면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매시노는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 몰래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다.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마피아는 음모와 배신 속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30년대 미 주름잡던 루치아노
5대계파에 뉴욕 분할통치 시켜

마피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찰스 루치아노다. 그는 1930년대 마피아 세계를 천하통일해, 미국 전역의 마피아 두목 모임을 만들었다. 〈타임〉은 1998년 “마피아를 재탄생시켜 미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루치아노를 ‘20세기를 움직인 100대 인물’에 뽑았다. 그는 2차대전 때 마피아 조직을 활용해 미 국방부가 독일 간첩을 색출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그 공로로 가석방되기도 했다.

루치아노는 마피아의 핵심기반인 뉴욕을 5대 계파에 나누어 분할통치시켰는데, 이것이 현재 마피아 5대 패밀리의 뼈대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한 알 카포네도 루치아노가 만든 전국 범죄단모임에 들어와 있었다. 라스베이거스를 세운 것으로 유명한 벅시 시걸도 루치아노 밑의 두목 중 한사람이다.

루치아노가 숨진 뒤 5대 패밀리는 때론 서로 충돌하고 때론 마피아 모임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1957년 5대 패밀리가 서로 연합해 뉴욕 주도권을 놓고 싸운 ‘5대 패밀리 전쟁’이 가장 유명하다. 가장 최근 일로는 1985년 갬비노 파의 두목 폴 카스텔라노가 뉴욕 중심가의 레스토랑 앞에서 총격을 받고 살해됐다. 그 후임 두목인 존 고티는 멋진 옷차림과 행동으로 언론에 노출되길 좋아하면서도, 뒤로는 무자비하게 반대세력을 제거한 걸로 유명하다.

마피아가 쇠퇴하면서, 이들과 싸운 연방수사국이나 지방검찰의 명성은 높아졌다. ‘마피아와의 전쟁’을 줄기차게 벌여 뉴욕의 범죄율을 뚝 떨어뜨린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대표적이다. 줄리아니는 지금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보내노 파가 살해하려 한 뉴욕시 검사 그레그 앤드리스도 유명해졌다. 그는 살해음모 이후 24시간 내내 경찰의 특별경호를 받고 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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